Julie's Reflections

줄리의 회상

November 1, 2015
International Adoption Awareness Month

2015년 11월 1일

국제 입양인의 달

As we commemorate International Adoption month, each day this month, I intend to blog my comparison of life as an orphan and life after adoption. Having experienced both, I wish to share insight on the blessing of being adopted but also life as an orphan. I hope that this will give you insight into what might have happened to so many adoptees had it not been for International Adoption. Blessings to you all.

국제 입양인의 달을 기념하기 위해 이달은 매일매일 블로그에 고아로서의 삶과 입양된 이후의 삶을 비교하여 글을 남겨보려 합니다. 입양의 축복뿐만 아니라 고아로서의 삶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해 보았기에 그 삶을 통해 얻은 통찰을 나누고 싶습니다. 만약 해외입양이 아니었다면 그 많은 입양아들이 어떻게 살아갔을지, 저의 이야기가 여러분께 그에 대한 이해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를 축복합니다.

November 1, 2015
Reflection Day 1

2015년 11월 1일

회상 1일

An Unwanted Child  -  Whether you are adopted or an orphan, we all started with an abandonment or birth parent(s)' relinquishment.

원하지 않은 아이 - 당신이 입양되었던 고아이던, 우리는 모두 버림받았거나 친부모의 포기로 시작되었습니다.

November 2, 2015
Reflection Day 2

2015년 11월 2일

회상 2일

Chosen vs Rejected - A child who is lucky to be chosen by a prospective adoptive family will soon be given the identity of belonging to a family. The fate of his or her life will change forever for the better.

선택받은 vs 거절당한 - 입양가족에 의해 선택된 행운의 아이는 곧 한 가정에 속하는 정체성을 얻게 되며 그 아이의 운명은 더 나은 삶으로 영원히 바뀌게 됩니다.

On the contrary, those who are not chosen remain in an orphanage or institution with the life-long title of "orphan!" It will be their home, the only home they will know until the age of 18. Their fate will be facing feelings of insignificance, rejection and loneliness.

그와는 반대로 선택을 받지 못하고 보육원이나 시설에 남게 된 아이는 긴 세월동안 ‘고아’라는 이름과 함께 그곳이 18살 때까지 집인 줄로만 아는 이 아이들의 집이 되고, 그들의 운명은 소외감, 사람들로부터의 외면과 외로움을 직면하게 됩니다.

November 3, 2015
Reflection Day 3

2015년 11월 3일

회상 3일

Homebound vs Homeless - A chosen child, his or her very existence has become an important matter to others, whatever the child’s race. A home and family awaits eagerly for his or her arrival. Yes, the internationally adopted child leaves his or her homeland, but it is inconsequential at this time. The baby’s most critical needs are not a particular culture, but a mom and dad who will provide physical and emotional affection, love, and stability.

가정이 있는 vs 가정이 없는 - 선택된 아이는 인종이 어떠하든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며 입양가정과 가족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 아이가 도착하기를 기다립니다. 물론, 국제 입양되는 아이는 그 나라를 떠나오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아이에게는 특정사회의 문화가 아니라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인 보살핌과 사랑,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부모가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No one awaits the orphans. Life in an orphanage means being provided the most basic of necessities, but within the cold framework of an institution. It cannot provide for emotional needs, and most importantly, it cannot provide the loving, nurturing care so crucial to a child’s sense of self. There is no heritage for these orphans. Through the lens of Korean community, orphans are socially tolerated dogs, always viewed with suspicion. Even in their adulthood, the opportunity for adult orphans to embrace their own culture is curtailed by societal bias. Orphans not only suffer from physical and emotional malnourishment, but cultural isolation as well.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고아의 보육원에서의 삶은 시설의 체제와 체계에 따라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들은 제공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가장 중요한 정서적인 부분의 요구나 아이들의 자아를 형성하기 위한 사랑을 채워 줄 수 는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눈을 통해 본 고아들은 사회적으로 개와 같은 취급을 받고 (사람들은) 잠재적 범죄자이라도 된 듯이 오해와 불신의 눈으로 이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심지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로 진출하고자 하는 기회조차 사회적 편견에 의해 축소되며 경제적, 정서적 결핍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회에서조차 고립됩니다.

*** I was unable to appreciate and come to love Korea and its culture until after I came to America and returned as a foreigner. I reflected on how much I knew of my own heritage when I lived in Korea as an orphan, and I honestly have no recollection of anything other than the embarrassment and shame of being an orphan. I now appreciate my homeland while understanding it flaws.

*** 나는 미국에 오고, 다시 외국인으로 한국에 돌아가게 될 때 까지 한국과 그들의 문화를 감사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고아로 살았던 때를 되돌아보고 떠올려 보면 솔직히 고아였던 것이 창피하고 난처했던 기억 외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이해하며 나의 조국에 감사합니다.

November 4, 2015
Reflection Day 4

2015년 11월 4일

회상 4일

Forever Family vs Orphanage Life - The fear of the unknown and language barriers are overcome as a child blends into his or her new family, and is introduced to love, affection, celebration, and learns to trust. The burden of being an orphan has lifted. He or she now belongs and becomes a family member. He or she will be protected, defended, cheered, cherished, and supported by family and friends. The child become valued. Every child’s dreams and hope..to be loved and be cared for by their mom and dad is realized.

영원한 가족 vs 고아의 삶 -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리고 언어장벽의 두려움은 아이가 그 가정에 일원으로 섞여 들어가며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 가족행사 등을 통해 함께 기뻐하는 것을 알아가며, 그리고 가족에 대한 신뢰를 배우면서 극복하게 됩니다. 이제 고아로서의 무거운 짐은 벗어 버리고 가족 구성원의 일원이 되면 아이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보호와 응원을 받고 소중히 여겨지며 지지와 지원을 받게 됩니다. 이 아이는 모든 아이들이 꿈꾸고 희망하는,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관심과 보호를 받는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됩니다.

Orphans will never understand and comprehend the depth of experience of what it means to have a family, or a mom and dad. In their orphanage home, they are unable to feel special or valued. Most “homes” are secured with a iron fence or a brick wall. Living by a regimented schedule, in lock step with the other orphans, is all they know. The absent of physical affection becomes evidence when visitors arrive. The children cling to anyone who will hold them. Individuality is absent; every item is shared with fellow children. Their inquisitive natures, creativity, and talents are not challenged, encouraged or even noticed. Rather, their hope is replaced with a desire to please and seek the favoritism of their caretakers. This is life in an orphanage.

고아들은 가족이나 엄마, 아빠를 갖는 경험이 어떤 의미인지 그 깊이를 절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보육시설에서는 자신이 특별하거나 가치 있는, 귀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느낄 수 없으며 대부분의 시설은 철제 울타리나 벽돌 벽으로 둘러져 있고, 다른 고아들과 함께 엄격한 스케줄에 맞춰 살아가는 것만이 그들이 아는 모든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스킨십의 부재는 시설에 손님들이 왔을 때 증거로 드러나게 되어 아이들은 그들을 붙잡기 위해 매달립니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창의력 그리고 재능들은 관심을 받거나 개발되지도, 심지어는 그런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하며 아이들의 소망은 양육자들의 편애를 얻기 위해 그들을 찾고 기쁘게 하기 위한 욕구로 변질 됩니다. 이것이 고아원의 삶입니다.

***The only family I understood were my fellow orphans. The only home I had was an orphanage guarded by brick walls. Institutionalization means living by a structured schedule with little deviation. My early memories of “home” are a giant room, limited meals, chores, no entertainment or special treats. I do not remember ever getting a hug or being praised as a child, but I do remember the constant mental and physical punishment. Who will protect the orphans?

***내가 가족이라고 인정했던 사람들은 오직 고아원 동기들뿐이었습니다. 머물던 보육원은 벽으로 둘러싸여졌으며 보육시설로 보내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짜여져 아주 약간의 예외 밖에 없는 스케줄 표에 의해 살아감을 뜻합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의 “집”이란 커다란 방에 부족한 음식과 여가생활이나 특별한 대우 없는 허드렛일들뿐입니다. 어린아이로 포옹을 받는다거나 칭찬을 받은 기억은 없지만 끊임없이 정신적인 그리고 신체적인 체벌을 받은 것은 기억합니다. 누가 이런 고아들을 지키고 보호 할 것 입니까?

November 5, 2015
Reflection Day 5

2015년 11월 5일

회상 5일

Parents vs Caretakers - Parents devote love and concern for their child. The child’s future is auspicious. The child continues to engage in laughter, adventure, sports, accomplishments, shopping, family gatherings, holidays gatherings, friends, education, traveling opportunities, and the list goes on. Parents provide the security the child needs, which includes simple things like holding hands or giving hugs. This love is the fuel so necessary for the child’s sense of self worth and healthy development.

부모 vs 양육자(보모) -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사랑을 쏟고 관심을 가집니다. 그 아이의 미래는 밝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함께 웃고, 모험하고, 쇼핑과 스포츠를 하며, 성취를 맛보고 가족모임, 명절모임, 친구들, 교육과 여행을 경험하고 이런 리스트들은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부모들은 간단히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을 해주는 것을 포함해 아이들의 욕구에 대한 안정감을 줍니다. 이런 사랑은 아이들의 자존감과 건강한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토양이 되어줍니다.

For orphans, the path is uncertain. Privilege does not exist. Opportunity to expand their world view is limited. Holidays are spent in an orphanage with fellow orphans. The caretakers who care for orphans are not the “parents”. Caretakers are paid facilitators who in many cases are over-burdened with a mountain responsibility. Therefore, the absence of individual care are the norm in this group. The sense of love, comfort, security, and confidence that a mother and family can provide, these rights are stripped away as soon they were placed into orphanages.

고아들의 앞길은 불투명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특권이란 없으며, 세계를 넓게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제한 적입니다. 명절이나 휴일은 그저 시설 안에서 고아원 동기들과 시간을 때우는 날이며 후원자들에 의해 사례비를 받는 양육자들은 과도한 업무와 막중한 책임을 떠맡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개별적, 개인적인 보살핌의 부재는 일반적입니다. 어머니나 가족이 줄 수 있는 사랑의 감정, 편안함, 안정감과 자존감 같은 권리는 아이들이 보육원에 오는 순간 사라져 버립니다.

***My caretakers' focus were on overseeing that we did not get into trouble and that we followed their rules. They had no interest in each of our souls, feelings, needs, hunger, or dreams. Instead, we were in constant fear. For instance, when they were having a bad day for any given reason, they would take their rage out on us. We would be punished physically, as well as being deprived of our meals. We orphans were insignificant and invaluable to them. But these people were all we had as our “parents” forever!

***나의 양육자들은 우리 개개인의 영혼이나 감정, 필요, 배고픔 또는 꿈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신에 우리가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과 그들의 규칙을 따르도록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로 그들의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우리에게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신체적 체벌을 받기도 했고, 음식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 고아들은 하찮기도 그리고 한편으론 소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에겐 ‘부모’였습니다.

November 6, 2015
Reflection Day 6

2015년 11월 6일

회상 6일

More and more adult adoptees are speaking out about suffering and abuse within adoptive homes. This is such a hurtful discovery for me and for many others because of our support for adoption. Especially this month, I ask for your special thoughts and prayers for those adoptees whether it's domestic or international, who have become victims of such tragic and are suffering so much. Pray for their strength, healing, courage, forgiveness, and peace. Thank you for your support.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성인 입양인들이 입양가정 안에서의 학대와 겪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입양을 돕고 있는 나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특별히 이번 달에는 국내 또는 해외로 입양된 이런 비극적 고통을 받는 피해자가 된 입양인들을 위해 특별히 관심과 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들에게 이겨낼 수 있는 힘과, 회복, 용기와 용서 그리고 평안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지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Lately, statements addressing feelings of grief, fear, hatred, frustration, hostility, resentment, and hopelessness have been exchanged by my fellow adoptees among one of my Facebook groups. Statements of encouragement, support, concern, along with suggestions are also exchanged. I could never speak or feel the immense pain of someone who has suffered horribly at the hands of his or her adoptive parent(s) or others. I find it difficult to comprehend the thought of anyone being subjected to such physical, mental and sexual abuse committed toward them by their very own adoptive father and/or mother. Truly, the purpose of adoption is to provide helpless and fragile orphans the safe and nurturing home they so deserve. Clearly, those promises were shattered. I am truly saddened and so sorry for this hurt and suffering. I grieve with you but also pray for justice and peace as you continue to struggle and search for answers. I pray for healing. I pray for solidarity, support, encouragement, love and understanding. I pray for peace in your heart. I pray for hope. I pray for a change of heart and a change of the system for the better. I pray for amicable resolutions.

최근에, 나의 페이스 북 그룹중 하나인 입양인 모임에서는 슬픔과 공포, 증오, 좌절감, 적대감, 분노 그리고 상실감들이 ‘감정 상태 메시지’로 서로 오갔습니다. 그리고 격려, 지지, 관심, 제안 역시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나는 양부모님 또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끔찍한 고통을 받은 다른 사람의 엄청난 고통에 대해 말하거나 느낀 적이 없었는데, 양아버지나 양어머니에 의해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성적인 학대를 당한 누군가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입양의 목적은 도움 받을 곳 없는 연약한 고아들에게 안정과 잘 자라도록 보살펴 줄 수 있는 가정을 제공하기 위함인데 당연히, 분명하게 보장되어야 할 약속들이 가족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린 것입니다. 이런 고통과 상처로 인해 너무 슬펐으며 유감스러웠습니다. 비통하지만, 또한 정의와 평안을 위해 계속해서 싸워나가고 답을 찾기까지 기도합니다. 회복을 위해 기도하며 공동체의 결속과 격려, 사랑과 이해를 위해 기도합니다. 당신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며 희망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그리고 사회가 더 나은 시스템으로 변하기를 기도하고 원만한 해결책을 위해 기도합니다.

My suffering was different than most adoptees, in that mine happened in Korea. In the orphanage, in Korean society, and even within what welfare system existed. The tragic part of all this is that adult orphans in Korea live their whole lives suffering in silence because orphans have no privilege to speak out against injustice. They are ostracized from society. They lack the ability to review their birth files. Even the act of looking for one's parents would itself be humiliating to them because they would be announcing their status as an orphan. Silence is their only choice. That said, even if they were to find their birth parents, they would likely be rejected.

내가 겪은 고통은 대부분의 입양인들과는 달랐습니다. 나의 고통은 보육원에서,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심지어 사회복지 제도가 있는 곳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성인 고아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불평등과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조차 없기에 침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외면당합니다. 자신의 출생기록을 찾아볼 능력도 부족하고 심지어 자신의 부모를 직접 찾아보려는 시도 또한 자신이 고아라는 것이 남들에게 밝혀지기 때문에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여 침묵을 선택합니다. 어쩌다 이들의 친부모를 찾는다 하더라도 친부모에 의해 거부당할 수도 있습니다.

As an orphan, I processed my grief, sorrow, anger, injustice, along with mental, physical and sexual abuse... by remaining silent. I did not have the courage of speaking about injustices committed against me. I swallowed these feeling and kept them inside me. But, despite the nightmare of orphanage life and being shunned by the society, my faith sustained me from falling into a deep depression or losing my mental stability. It was not until I came to America that I had the courage to share my abusive past. So many crimes were committed against me and my fellow orphans. Sadly, we will never find justice, and those remaining in Korea continue to live with the stigma and burden of being an orphan.

고아인 나의 정신적, 신체적, 성적 학대는 침묵 속에서 슬픔과 외로움, 분노와 불의로 자라났으며 그런 내가 당한 불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습니다. 단지 이런 감정들을 집어삼키고 속으로만 담아두었습니다. 악몽과 같은 보육원 생활과 사회로부터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나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정신적인 불안상태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지탱해 주었고, 신앙은 내가 미국에 오게 된 이후에도 이 학대받은 과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내게 힘이 되었습니다. 나와 보육원 동기들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악행들이 자행되었고 슬프게도 우리에게 정의란 없었으며 이런 것들은 한국에서 고아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여전히 벗지 못한 낙인과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습니다.

It is from this perspective that I read of tragic cases of abuse within adoptive families, and comments about how children would have been better off had they been left in Korea. Having lived and suffered that alternative reality, and as cold and cavalier as it may sound, I would have chosen an abusive family in a country where I could try to move forward once I was an adult over an abusive institution where I was dumped into a society which rejected my existence. This is the truth in Korea even today - orphans have no value, no place, no voice.

입양가정 안에서의 비극적인 학대 사건들과 한국에 남겨진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글을 이와 같은 저의 시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약 고아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차갑고 관심 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언젠가 내가 노력해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학대받는 입양가정을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성인으로 나의 존재자체를 배척당하는 사회로 내던진 그 학대 시설을 거쳐 왔기 때문입니다. 고아에겐 어떠한 가치도, 머물 장소도, 목소리도 낼 수 없는 곳이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I do not expect you to agree with me, but I wanted to acknowledge to you all that I have learned a great deal of the suffering among you and I am truly sorry for it. But also, I want you to understand that those children who remain in orphanages need a home, a mom and dad, an opportunity, and hope, which most of us are blessed to have. It is a sad reality that not every adoptive home will be the loving and supportive place it should be, but these children should at least be given a chance for a bright future, the type of future which does not exist for them in Korea.

당신이 저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겪은 고통에 대해 저도 진심으로 통감하며 그 고통을 통해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가정, 엄마, 아빠 그리고 기회와 같이 축복으로 얻은 것들이 보육원에 남아있는 아이들에게도 필요합니다. 모든 입양가정들이 사랑과 보살핌을 줘야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은 슬픈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 아이들에게는 한국에서는 꿈꿀 수 없던, 밝고 새로운 모습의 미래를 향한 기회만이라도 주어져야 합니다.

November 7, 2015
Reflection Day 7

2015년 11월 7일

회상 7일

“I was chosen, I was wanted, I was cherished, I grew in their hearts, I was the missing piece, I was loved, I was adopted”. ~ Unknown Source

“나는 선택받았고, 나를 원했으며, 소중히 여겨지고. 그들의 가슴속에서 자라났으며, 나는 잃어버린 한조각의 퍼즐이었고, 사랑을 받았다. 나는 입양되었다.” - 출처 미상

“I was rejected. I was denied. I was a burden. I grew in no one’s heart. I was lonely. I was not adopted”. ~ The World of Orphans

“나는 버림받았고, 외면당했으며, 그저 짐이었다. 그 누구의 가슴속에서도 자라나지 못했고 나는 외로웠다. 나는 입양되지 못했다.” - 고아들의 세계

***These words live in me because I experienced this entire spectrum, as an orphan and as an adoptee. I am thankful for adoption.

***나는 고아와 입양인 모든 영역에 걸쳐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이 단어들 모두가 내 안에서 살아있습니다. 입양된 것에 감사합니다.

November 8, 2015
Reflection Day 8

2015년 11월 8일

회상 8일

A Chance for Success vs A Life of Insecurity - When a child is provided with love, affection, encouragement, challenges, praise, rewards, social activities, a safe environment which are critical for a child’s development, he or she will develop a sense of stability, confidence, self-worth, contentment, satisfaction and a chance of success in their life.

성공의 기회 vs 불안한 삶

아이에게 사랑과 애정, 격려, 도전, 칭찬, 보상, 사회활동, 안정된 환경 등 아이들의 발달에 필수적인 요건들이 제공되어 지면 아이들의 안정감, 자신감, 자존감, 만족감등이 발달되어지며 성공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커지게 됩니다.

When basic needs are replaced by abuse and neglect, or only the bare minimum is provided, a child’s chance of suffering are greater, of gaining self-confidence is slim, and consequently, the child develops low self-esteem and deprivation. In an orphanage, opportunities for orphans to develop self-confidence is hampered by insufficient love and support.

기본적인 욕구가 학대나 방치로 대체되거나 너무나도 부족하게 공급되어지면 아이가 고통 받을 기회는 더 커집니다. 자신감은 줄어들고 그 결과로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결핍됩니다. 어떤 보육원에서는 사랑과 지원의 부족으로 인해 아이들의 자신감 계발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In the world in which I grew up, instead of love and affection, we feared our caretakers. Instead of praise and hugs, we faced beatings. Our words had no value and we weren’t allowed to socialize outside of the complex. Our life was trying to survive each day without being picked on or being abused. As a result, many of my orphan sisters suffer significant sense of insecurity, and I struggle with this as well.

***내가 자라온 세계에서는 사랑과 애정대신에 보육선생님에 대한 두려움이, 칭찬과 포옹 대신에 폭력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세계에는 가치란 없었으며 바깥세상과의 교류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은 괴롭힘 당하거나 학대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었으며 그 결과, 많은 고아원 동기들은 심각한 불안증세를 겪었고 나 역시 이 불안증세를 이겨내기 위해 지금도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November 9, 2015
Reflection Day 9

2015년 11월 9일

회상 9일

The Friends, we all have close friends. Good friends know you. They share many things. They cherish you. They share life stories, travels and experiences. With friends, you are able to be yourself without the fear of judgement. Making friends is a natural and a part of life, yet we often take it for granted.

친구, 우리는 모두 가까운 친구들이 있으며 친한 친구들은 당신을 압니다. 그들과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친구들은 당신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일상적인 삶을 공유하고 여행이나 경험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친구들과는 나를 판단할 것이라는 걱정 없이 나 스스로, 내 본연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친구들을 사귀는 것은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며 우리는 때때로 당연하게 여깁니다.

Last month, I met with my orphan sisters in Korea. They are in their early 50’s, and I observed their expressions as they each arrived at the event. Many had not seen each other for 10 years or longer. The exuberance in their faces as they met up with their orphan sisters was worth the effort to attend. The minute they were reunited, a huge burden lifted as each understood she did not have to disguise her past. They were all orphans and still living with that stigma. Instead of all the hateful words that they could have expressed for their past and present, they celebrated the evening with laughter, tears, caring, and the joy of seeing those with whom they shared so much in common - having experienced similar challenges.

지난달 한국의 보육원 동기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50대 초반으로 행사장에 오는 친구들 각각의 표정을 눈여겨보았습니다. 많은 수가 10년 또는 그 이상을 서로 만나지 못했는데 동기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 있었고, 이는 그 자리에 참석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시 모인 그 순간만큼은, 우리의 거대하고 무거운 짐을 서로 모두 다 이해하고 있었기에 지난 과거를 감추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고아이고 여전히 그 낙인과 함께 살아가지만, 과거와 현재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증오의 말들 대신에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삶의 경험과 어려웠던 일들을 웃음과 눈물, 배려와 그것들을 누리는 기쁨으로 그날의 저녁을 축하했습니다.

In an attempt to understand their emotions, needs, and experiences, we conducted a survey. One of the questions was how many friends they each had. The general consensus was that they had no friends outside of their family, and if they had friends, they disguised their identity as an orphan. The fear of humiliation and rejection prevented them from attempting to make friends. It was understandable to me why they choose to remain silent.

동기들의 마음과 필요, 경험들을 이해하기위한 노력으로 설문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중 한 질문은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있냐는 것이었는데 하나같이 만약 친구를 사귀려면 고아라는 신분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가족 외에는 친구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깔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배척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친구를 사귀는 시도조차 막아버린 것이었고, 나또한 침묵 속에 남아있기 원하는 이들의 선택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I have been very blessed to have so many friends here who understand my past, encourage me, and let me create so many wonderful memories. I have no barrier in choosing who my friends are. This is possible because I no longer live in Korea as an orphan. This barrier to friendships is one more difficulty adult orphans endure. By itself, this challenge may not seem particularly significant, however it is yet another reminder of the inability of orphans in Korea to integrate into society.

나는 이곳(미국)에서 나의 과거를 이해하고, 격려해주며, 아름다운 기억들을 만들어준 너무나도 많은 친구들을 축복 속에 얻었습니다. 친구를 얻는 것에 가로막는 장벽이 없었고 이것은 내가 더 이상 한국에서 고아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친구 사이의 장벽은 성인 고아로서 이겨내야 하는 또 하나의 장벽입니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여 질 수 있지만 이것은 아직도 한국에서 고아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November 10, 2015
Reflection Day 10

2015년 11월 10일

회상 10일

No Justice - As international adoption month continues, many adoptees have shared their unique experiences both positive and wonderful experiences, as well as horrific and abusive experiences. I have been educated to a new dimension of international adoption. I hope that adoptees who have the privilege to speak out about their experiences appreciate the opportunity to share their stories.
I speak for those who are denied the privilege to speak out, for those who must remain silent within their own society. My fellow orphans have no voice. I want to be their voice. I am going to share a number of personal stories of mine and my orphan sisters. To adoptees who believe that they would have fared better had they never been adopted, please understand that I, along with my fellow orphans, are nothing but envious toward you.

정의의 부재 - 국제 입양인의 달이 계속되면서 많은 입양인들이 특별하면서도 긍정적이고 경이로운, 반대로 끔찍하게 학대당했던 경험들을 공유했습니다. 나는 국제 입양의 새로운 관점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얻는 입양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을 고마워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말할 수 있는 권리조차 무시당하는, 그들의 사회에서 조차 침묵 속에 지내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보육원 동료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려 합니다. 입양되지 않았다면 훨씬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믿으시는 입양인분들께서는 저와 저의 보육원 동료들은 여러분을 부러워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Our caretakers were a couple, a husband and wife. He was a pastor. I remember vividly to this day, being thrown into a dark shack after being beaten over 100 times. Covered in bruises, no food, no heat, and no light, in freezing temperature, I was despondent. This was a common punishment used against my orphan sisters as well. Other times, I’d witnessed my sisters’ being struck in the head with sticks, blood flowing from their wounds. One beating I suffered resulted in a sprained wrist. After two weeks, my caretakers finally took me to a doctor, but I had to tell the doctor that I had fallen. I ended up with a cast.

우리의 양육자들은 부부였는데 남편은 목사였습니다. 나는 100여대를 얻어맞고 어두침침한 방에 내던져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얼어붙을 듯이 추운 날에 온몸은 멍으로 뒤덮이고 음식도 난방이나 불빛도 없이 절망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보육원 동기들도 겪는 일반적인 체벌이었었고 때로는 동기의 머리를 막대기로 내리쳐 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내가 맞아서 손목을 삐었으나 양육자들은 2주가 지나서야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나는 그때 의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했어야 했지만, 할 수 없었고 저의 팔목은 결국 깁스를 하게 되었습니다.

There was an instance when I was kicked out of the “home” and told to go get lost in the mountains. I was perhaps nine years old. I followed their orders and walked away because begging for mercy would result in more of a beating. I was scared that wild animals would come and hurt me or kill me. I had no place to run. I was terrified. I remember crying until I could cry no more.
In the winter, in the freezing temperature, we walked to school every day. Often, we had no socks. It was so cold that many of my sisters including me ended up developing frostbite on our toes. I remember being treated at the hospital. Our home was never warm in the winter. On one instance, on the way to “home,” I spotted a chewed piece of gum, and I picked it up and brushed off the dirt as much as I could so I could try it. We never had those sorts of things at the orphanage. Food and snacks were scarce.

아마 내가 9살이었을 때쯤 한번은 보육원에서 내쫓더니 산속에 들어가 사라져버리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나는 용서를 빌어봤자 더 맞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을 따라 걸었습니다. 야생동물이 나타나 해치거나 죽이지는 않을까 두려웠지만 달아날 곳이 없었습니다. 겁에 질린 나는 울고 울다가 울음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종종 얼어붙을 듯이 추운 겨울날에 종종 양말 없이 학교에 걸어 다녔습니다. 너무나도 추워서 나와 많은 동기들의 발가락은 이내 동상에 걸렸고 병원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집’은 겨울 동안 따뜻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다 버려진 껌을 발견하여 주워 들고 할 수 있는 대로 먼지를 털어내고 씹어보았습니다. 보육원에서는 음식과 간식들이 항상 부족했기에 이런 종류의 군것질은 경험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Our caretakers made us constantly late to school, and we were ordered to come straight home after school. If we were late, we were punished. Our caretakers had complete control over our lives. There was so much more despicable abuse that occurred which I am to this day horrified to reveal, but you can imagine the vulnerability of orphans. Our caretakers were never held accountable for their crimes. He still is a pastor. This was my orphanhood. This is why I firmly believe that adoption and not institutions is the only alternative for orphans. Even though today’s orphanages prohibit beatings, who guarantees the safety of these children? My heart and emotions ache as I share my past life in the orphanage, but I want my fellow adoptees and others to realize what life in a Korean orphanage may have held for them. I am glad that adoptees have a voice with which to seek healing and justice. Korean orphans have none.

우리의 양육자들은 항상 학교에 늦게 보내고 끝날 때는 곧장 돌아오도록 시켰습니다. 늦기라도 한다면 체벌을 당해야 했고 그들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조종했습니다. 더욱더 비열한 학대가 자행되었는데 나에게 지금이라도 나타날까 두려운 일이 하물며 무방비 상태의 어린 고아들에게는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책임을 진 적이 없으며 지금도 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고아시절이며, 이것이 내가 왜 보육시설이 아니라 입양만이 고아들을 위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보육원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누가 이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까? 보육원에서 지내던 나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나의 입양인 동료들과 다른 사람들도 한국 고아들이 겪어야하는 그들의 삶을 알기 바랍니다. 입양인들이 위안과 정의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기쁘지만, 한국의 고아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November 11, 2015
Reflection Day 11

2015년 11월 11일

회상 11일

Gratitude - In honor of Veterans Day, I want to express my gratitude for the men and women who have served and who are serving in our country’s military. Without their sacrifice and dedication we would not enjoy the freedom we cherish, and neither would so many others around the world. South Koreans, for instance, only have to look across the DMZ to see what fate could have awaited them.

감사 -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를 위해 참전하셨던 남녀 군 장병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와 이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누릴 수 도 없었습니다. 한 예로, 한국인들은 DMZ 너머를 보기만 해도 어떤 운명에 처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When I was living with Molly Holt as a young adult, volunteering in the office at Holt Il San, every year, during Thanksgiving and Christmas, the mentally and physically challenged orphans anticipated a special event. U.S. Army soldiers not only came to visit them, but they brought a load of food, snacks, and toys. They were all in uniform, which impressed the residents. They held hands with children and made the orphans smile. Santa Claus visited too. They warmed the hearts of these orphans. These soldiers made them feel special and helped them truly celebrate the holiday. They performed this selfless act as ambassadors of our great country. I will always remember them with respect and appreciation.

내가 몰리 홀트와 함께 살던 젊은 시절, 매년 신체와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고아들이 너무나도 기대하는 특별한 행사가 있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때마다 일산 홀트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로 일을 했습니다. 미군 병사들은 단지 방문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음식과 과자 그리고 장난감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보육원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군복을 입고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미소를 짓게 해주었습니다. 산타클로스 역시 방문하였고, 군 장병들은 이 고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미군 병사들은 위대한 나라의 친선 대사와 같이 섬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이 아이들로 하여금 특별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었고, 이날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나는 항상 그들을 기억하고 존경하며 감사드립니다.

November 12, 2015
Reflection Day 12

2015년 11월 12일

회상 12일

Identity - The new Korean adoption law of 2012 has had a dramatic impact on international adoption. This law requires all unwed mothers to register the birth of their babies. This was lobbied for by an organization called Truth & Reconciliation for the Adoption Community of Korea (TRACK). This law is based on the premise that children have the right to an identity, according to the president of TRACK. Having suffered through her own identity issues, and having faced discrimination within her adoptive family and community, she sought out her identity in Korea. She argues that children are compromised if adopted anonymously. This change in law has had an adverse impact on adoptable children. As a result, there has been a dramatic increase in the number of children who are “dumped” into orphanages.

정체성 - 2012년 새로운 입양특례법이 국제 입양인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법은 미혼모에게 아이의 출생을 신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것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한국인 입양인 모임” (TRACK)이라는 단체의 로비에 의해 재정되었고 이 법은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TRACK의 대표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와 입양가정 안에서 그리고 사회에 받은 차별들로 인해 고통들을 겪었으며 한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 아이들이 익명으로 입양되어진다면 위태로워 질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법은 곧 입양이 될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그 결과로 보육원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Here is my view. First, this law ignores the complexity of Korean culture. The culture does not welcome unwed mothers or orphans. Orphans live an anonymous life disconnected from mainstream society. Second, birth mothers are reluctant to register their babies because it will become part of their permanent records and subject them to prejudicial treatment particularly when it comes to marriage opportunities. Consequently, they face the difficult choice to abandon their babies. Third, because these abandoned children are not registered, they become unadoptable both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나의 관점으로 그 이유는 첫째로, 이 법은 한국 사회의 미혼모나 고아를 반기지 않는 문화적으로 복잡한 특성을 간과 했습니다. 고아들은 주류사회에서 단절된 익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둘째로, 아이의 엄마는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기록이 남게 되고 이것은 특히 결혼의 기회가 있을 때 자신에게 불리한 약점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출생 신고하기를 꺼려합니다. 따라서 엄마들은 아이를 져버리는 어려운 선택을 직면하게 됩니다. 셋째로는, 이렇게 출생신고가 되지 않고 버려진 아이들은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도 입양될 수 없는 아이들이 되어 버립니다.

As a child raised in an orphanage, my biological identity vanished. The orphanage taught me that I was of no value to society. I was useless, stupid, ugly and worthless. That was the identity that Korean culture gave to me as an orphan. My identity was not Korean, my identity was being an orphan. Therefore, if one wishes to provide a child with his or her identity, an orphanage is counterproductive to that goal. The best place for a child to find an identity is within a family.

보육원에서 나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 가르침을 받고 자라면서 나의 생물학적 정체성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고아로서의 정체성은 형편없고 멍청하고 못났으며 쓸모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 아이에게 정체성을 주기를 바란다면 보육원은 그 목적에 역효과를 낳을 것입니다. 아이가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가족 안에서입니다.

November 13, 2015
Reflection Day 13

2015년 11월 13일

회상 13일

Purpose - I am not a writer, nor social worker, nor was I adopted at a young age. I was a victim of the Korean orphanage in which I grew up. I struggle with English, and I lack sophisticated language skills. My adoption story, which is unique and unconventional, does not provide me with experience in growing up within an adoptive family. But I feel the need to share my experience as it relates to the suffering shared by orphans living in Korea. I am just an ordinary person who has a passion for love for God, my family, friends, fellow adoptees, and my fellow orphan sisters. Each of my postings are a reflection of my life as an orphan and my transition beyond that label. My sole purpose is to acknowledge the importance of adoption, and to shine a light on the eternally forgotten ones, the insignificant ones, the disregarded ones, the unspoken ones… the adult orphans in Korea. Thank you for your continued support in following my journey. There is more to come.

목적 - 나는 글을 쓰는 작가도, 사회복지사도, 어렸을 때 입양된 사람도 아닙니다. 내가 자란 고아원의 피해자이며 영어 때문에 씨름하고 언어 능력 또한 부족합니다. 나의 입양 이야기는 입양가정 안에서 자라난 경험이 없기에 특이하고 남들과는 다르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고아들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공유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나의 가족, 친구들, 입양인 동료들, 보육원 동기들을 사랑하는 열정을 가진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이곳의 모든 글들은 고아인 나의 삶의 반영이자 그것을 뛰어넘어가는 변천과정입니다. 유일한 목적은 입양의 중요성을 이해시키고 영원히 잊혀진 사람, 천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 무시당하고 말 못하고 있는 한국의 성인 고아들에게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지원과 저의 여정에 함께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November 14, 2015
Reflection Day 14

2015년 11월 14일

회상 14일

Stolen - Until I moved to America, trust was not a part of my vocabulary. In an institution, the only people orphans can hope to trust are their caretakers or directors. Orphans’ lives are dictated by a rigid schedule. Love and affection are largely absent from their world. Because of this, orphans lack the opportunity to build the fundamental trust which typically develops between a parent and a child. As a result, orphans grow up distrustful of others.

도둑맞은 -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신뢰라는 것은 내게 없었습니다. 보육원에서는 양육자와 감독관만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고아들의 삶은 엄격한 스케줄 표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이 아이들의 삶 속에 사랑과 보살핌이란 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아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부모와 아이 사이에 형성되는 신뢰의 기초를 쌓을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During the long winter break of my 8th grade year, I was told to work at a local factory. It was a glass factory. I remember working everyday for eight hours or longer. When I got paid, I was ordered to take my pay to my caretakers. They promised me that the money was going into a bank account in my name. I don’t know how much I actually earned because I was too afraid to open the envelope. I worked full time for two months. On one occasion, a man at work became upset by something I said. I was just trying to be friendly. He spit right in my face. He felt he could do this because, after all, I was only an orphan. I didn’t deserve the level of respect and dignity of a normal person. I was shocked. I felt completely humiliated and violated, but I had no right to confront him. From that time on, I did everything in my power to keep my status as an orphan a secret. I promised myself that I would live in silence. As you have probably already assumed, I never saw my money. My “caretakers” robbed me. They lacked integrity, and violated my trust. They not only stole my hard earned money, they stole my trust. Sadly, this would be the first of my experiences of people taking advantage of my status as an orphan and robbing me of my labor.

길었던 8학년(중2)의 겨울방학 동안 지역의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유리공장이었고, 매일매일 여덟 시간 또는 그 이상을 일해야 했는데 월급을 받을 때는 양육자들이 자기들에게 맡기라고 시켰습니다. 그들은 그 돈이 내 이름의 은행 계좌로 들어간다고 했는데 나는 그 월급봉투를 열어보는 것이 두려워 얼마가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두 달 동안을 일했는데 어느 날은 그곳에서 일하던 한 분이 나는 친해지려고 해서 했던 말 중 어떤 부분에선가 화가 나 내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일반가정의 아이와는 다른, 고아이기 때문에 사람취급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너무나 충격적 이었습니다. 치욕적이고 자존심이 처참히 짓밟힌 것을 느꼈지만 그 사람에게 맞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나는 내 온 힘을 다해 고아라는 것을 감추었고 나 스스로 침묵 속에 살아야 한다고 다짐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예상했듯이 나의 월급은 본적도 없이 양육자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정직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을 향한 나의 신뢰를 짓밟아 버렸습니다. 내가 힘들게 번 돈을 훔친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한 신뢰마저도 도둑질해 간 것입니다. 슬프게도 이것이 나의 첫 노동착취이자 고아인 나를 이용해먹은 첫 번째 경험이 되었습니다.

November 15, 2015
Reflection Day 15

2015년 11월 15일

회상 15일

Voices - Many of us have been recognizing international adoption month by sharing stories and tributes. While these tend to come from those connected to international adoption, they come from all walks of life. Adoptees, adoptive parents, friends, representatives of various organizations, and others have all shared their thoughts. Each provides a unique view. These experiences have included descriptions of growing up within loving families, abusive homes, various other challenges, and feelings ranging from gratitude to resentment. We honor and thank adoptive parents who have raised adoptive children with love and devotion. We share the frustration toward adoptive parents who have failed to nurture their children. Without access to social media, many of us lack the opportunity to understand this issue.

목소리 - 국제입양인의 달을 맞이하여 그들의 이야기와 감사의 글들을 공유하면서, 이 글들이 국제 입양인들로부터 오기도 하고 때로는 입양인, 입양하신 양부모님, 친구들, 다양한 단체의 대표 또는 그 외의 분들이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각계각층으로부터 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각기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며 이 경험들은 사랑받는 가정에서나 학대받는 가정, 그 외의 많은 시련과 감사에서부터 분노에 이르는 감정까지 모두 다양하게 묘사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입양하여 사랑과 헌신으로 기르시는 입양인 부모님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 접하지 않아 이러한 문제들을 함께 공유할 기회가 부족하여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실패하셨던 분들께는 유감을 표합니다.

Of course, this turns my mind to adult orphans in Korean. I tried to find publications discussing them, but found none. If they are out there, they are not readily accessible. Perhaps this is because orphans in Korea are a taboo. No one seems to know or care about their needs, the hardships they face, and the dreams they hold in their hearts. It is as though they do not even exist. Korean society does not recognize them. If anything at all, they are seen as a burden to society. Shouldn’t they be able to publicly voice their opinions? Shouldn’t we validate their views? Tragically, this is not the world in which they live. Retaliation, fear, lack of self confidence, and lack of an audience - these are among the many reasons we do not hear their stories. While many connected to international adoption have weighed in on this issue, the only thing we hear from the perspective of adult orphans in Korea is silence.

물론 이것으로 한국의 성인 고아들에 대해 나의 마음이 더 가게 되었고, 이런 문제대해 논의해보고자 출판물들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의 고아들이 터부시되기 때문 일 것입니다. 만약 출판물들이 있더라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의 필요나 곤란에 직면한 상황, 그들의 마음속에만 가두어둔 꿈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며 이것은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들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회의 짐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가 공론화 되면 안 됩니까?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인정하면 안되나요? 비극적이게도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선 안 됩니다. 보복과 두려움 , 자신감 결여 그리고 들어줄 청중이 없다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많은 이유들 중 몇몇입니다. 한국의 성인 고아들의 관점에서 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많은 국제 입양 연관기관의 반응은 침묵뿐이었습니다.

November 16, 2015
Reflection Day 16

2015년 11월 16일

회상 16일

Sold - Children are more likely to strive to their fullest potential and enjoy being kids in a family setting. The presence of love, encouragement, communication, and reciprocal respect fuels them. Families share laughter, celebrate achievement, and support children’s dreams. Parents allow children to enjoy their youth, and the opportunity to grow through friends, school, sports, music and much more. I have watched my daughters enjoy this privilege, and thrive forward toward their goals.

팔린 - 아이들은 가정환경 안에서 사랑, 격려, 소통과 상호간의 존중 등의 존재가 밑거름이 되어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 시키거나 성장하기위해 더욱 노력할 가능성이 큽니다. 가족들끼리는 함께 웃고,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함께 축하하며 아이의 꿈을 지원해주고 부모들은 아이들이 유년시절을 즐기고 친구들을 사귀며 학교, 운동, 음악 그리고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합니다. 나는 딸들이 이러한 특권을 누리며 그들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 전진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My orphanage was small and privately operated. It began as a large orphanage, but it adopted out most of the babies. Those of us who remained were the “leftovers.” There were 26 of us, all girls, and we grew up together. I did not experience a childhood in the sense that the typical American might mean by that term. We were never children. We were orphans with little to no value.
In their youthful age, as soon as my fellow sisters finished middle school, many were sent out to work for a family. So, instead of being teenagers, they became live-in maids. Slavery would be a more accurate description, since they did not have the right to keep the little money they earned. If my sisters did not take their earnings directly to the orphanage, they were subject to beating. The cruelty of our “caretakers” was beyond words. And the families did not care about the fact that these were just children, they wanted cheap labor. This was the curse of being a Korean orphan. People do not regard innocent orphans’ feelings. They see them as an opportunity to take advantage of them. I ended up placed in a family, too. And, as it should come as no surprise, my experience as a “maid” was yet another painful chapter in my life…….

내가 자란 보육원은 작았고 사립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보육원이 점점 더 커져가면서 대부분의 아기들은 입양을 보내졌는데 그 아기들 중 우리는 ‘음식물 찌꺼기’ 같이 남겨졌습니다. 모두 26명의 여자아이들은 함께 자라났으며 그 시절엔 일반적인 미국 가정의 아이들과 같은 유년시절은 누려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들이 아니었고, 그저 천한 고아들이었습니다.

보육원 동기들의 유년시절에는 중학교가 끝나는 대로 다른 가정에 일을 하기 위해 보내졌습니다. 십대가 되는 대신에 식모가 된 것이죠. 노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보육원 동기들은 일하고 번 돈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권리도 없었고, 양육자들에게 돈을 번 즉시 건네주지 않았을 때는 매를 맞는 사유가 되었습니다. 양육자의 잔인함은 그 단어를 뛰어넘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일한 가정의 가족들에서 우리들은 단지 아이들이었고 값싼 노동력을 원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고아가 되는 것의 폐해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리고 순진한 고아들의 고통과 설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들이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기회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끝내는 한 가정에 식모로 보내져 제 삶속에 또 하나의 고통스러운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November 17, 2015
Reflection Day 17

2015년 11월 17일

회상 17일

Adrift - Children seek their parents’ protection when they are threatened. They know that their mom and dad will rescue them. Parents ache when they see their child in pain. Parents help heal their child’s wounds. They look out for their child’s well-being. Children from families always have a place to go where they can feel safe... to their parents. This is not true for orphans. They have no such protection. They have no safe haven. They are left adrift. I too was sent to a family. I was told that if I wanted to finish high school, I needed to move in with a family and become their maid. In exchange, the family would pay for my tuition, transportation and room and board. The family consisted of a couple with three boys ranging from high school aged to elementary. I was just barely 16. The oldest son had his own room while I was told to sleep in the room with the two younger boys. My circumstance quickly became hellish. I was immediately, and continually, subjected to sexual abuse by the older sons. I could not sleep. I lay in fear each night. I had nowhere to escape. The only time I felt safe was when I was away from this home attending school at night. I did not dare report their behavior to their mother. I knew what side she would rush to take, and it certainly would not be mine. If she lashed out, it would be at me.   

방황 - 아이들은 위기가 닥치면 부모의 보호를 찾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와 아빠가 나를 구해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고통 속에 있는 것을 볼 때 마음 아파하며 아이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돕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지켜줍니다. 가정의 아이들은 항상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부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아들에겐 적용되지 않습니다. 보호받을 곳이 없으며 피할 수 있는 피난처도 없고 그저 방황 속에 버려져 있습니다. 저 또한 한 가정에 식모로 보내졌는데 양육자들이 말하기를 만약 내가 고등학교를 마치기 원한다면 그 집의 식모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두 부부와 고등학생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3형제가 있는 가정에서 저의 학비와 교통비 그리고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막 16살이었는데 그 집의 큰 아들은 따로 방이 있었고 저는 다른 두 명의 남자 형제들과 함께 방을 써야 했습니다. 저의 환경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그 집 장남에 의해 즉각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하여 매일매일 밤을 공포 속에 자리에 누워야 했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겐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제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 때는 오직 밤에 학교를 가서 집에서 떨어져 있을 때뿐 이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를 그들의 어머니께 말해 보았자 그녀가 누구의 편을 들것인지는 뻔했습니다. 분명히 내편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를 비난 할 것이기 때문에 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습니다.

As horrible as this situation was, I was actually relieved to be away from the constant physical and mental abuse of my caretakers. And, as long as I remained silent, I would not be subjected to further humiliation or physical abuse by this family. However, I was literally out on my own. I had no one to talk to about my hopeless situation. 

이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오히려 양육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육체적, 신체적 학대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침묵하는 동안에는, 이 가족에 의해 더 끔찍한 모욕이나 신체적 학대를 당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때의 나는 말 그대로 내가 아니었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말할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My orphanage did not care about my safety. I was a frightened, defenseless, insignificant object. I felt my life had absolutely no value. This was the first chapter of my journey after “aging out of the orphanage,” and I was not yet 18.

보육원에서는 나의 안전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습니다. 나는 겁에 질려있었고, 무방비 상태였으며, 그저 하찮은 존재였습니다. 나 스스로 너무나 분명하게 내 삶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제가 18살 되기 이전의 보육원 밖 삶의 첫 여정이었습니다.

November 18, 2015
Reflection Day 18

2015년 11월 18일

회상 18일

The Missing Piece - Love is essential to our lives. Love not only creates a feeling of acceptance and provides emotional support, it validates the importance of our existence. We crave it, we wish it, we work for it. Love gives us a sense of self confidence, a sense of belonging, and security. It comforts us. We also reciprocate this love to our family, friends, and others. Love eases the pain of victims of tragic circumstance and helps them overcome obstacles, including fear. The receipt of love can alter a person’s world. Children thrive with the presence of consistent love. Love influences how we view ourselves and the world. An adoptive family’s willingness to share their love with an orphan provides the child with infinite opportunities. This simple desire to love an orphan as their own unconditionally is a gift to both the child and the family.

잃어버린 조각 - 사랑은 우리의 삶에 필수적입니다. 사랑은 단지 정서적으로 지원을 주고받는다는 느낌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 존재에 매우 중요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갈망하고, 원하며, 사랑하려고 합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자신감, 소속감, 안정감을 갖도록 하며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또한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을 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비극적인 환경의 피해자들의 고통을 완화시켜 주기도하며 그들의 두려움과 같은 장애를 극복하는 것을 돕기도 합니다. 사랑의 처방은 한 사람의 세상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변함없는 사랑의 존재로 인해 성장해나가며 사랑은 나 자신과 세상을 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입양가정에서는 고아인 아이에게 무한한 기회를 제공함으로 기꺼이 그들의 사랑을 나누어 주고, 입양 부모는 그 아이를 기본적으로 자기 친자식과 같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자하는 열망이 있기에 그 아이와 가정 양쪽 모두에 축복입니다.

In an orphanage, love is largely absent. An Orphan’s opportunity revel in a sense of love is a rare occurrence. Occasionally, visitors will spare their love, but the moment swiftly passes. Visitors depart, and the feeling vanishes. Orphans witness their “friends” calling out to their mom and dad, and see the parents react with affection. This simple observation is a reminder to the orphan that they are not the equals of other children. Orphans are denied the comfort of calling out for their mother or father. Orphans cannot help but feel less wanted, insignificant, and inferior. The absence of a mother and father is evidence in their behavior. They isolate themselves at school. They are subjected to bullying and discrimination. And the final insult is when they age out of the orphanage and are exiled into a world that rejects them.

보육원에서의 사랑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고아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누릴 수 있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주 드뭅니다. 가끔 방문자들이 그들의 사랑을 나눠주기도 하지만 그 순간은 이내 곧 지나가 버립니다. 방문자들은 곧 떠나고 사랑의 감정은 사라져 버립니다. 고아들은 그들의 친구들이 엄마나 아빠를 부르면 그 부모들이 사랑을 담아 화답해 주는 것을 목격하곤 하는데 이런 흔한 광경에서 조차 고아들은 자신이 일반가정의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합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나 아빠를 편하게 부르는 것조차 박탈당했습니다. 고아들은 덜 원하고, 덜 중요하고, 더 낮은 감정을 느낄 수 밖 에 없습니다. 엄마 아빠의 부재는 그들의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학교에선 그들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왕따를 당하거나 차별을 당하기도 합니다. 가장 치욕적인 것은 보육원을 퇴소하고 그들을 배척하는 세계로 내 던져질 때입니다.

My ability to stay strong and survive after being kicked out of the orphanage did not come easily. I was the quintessential product of an orphanage. I could have become an anonymous victim, a statistic. But, there was a love that I held. A love that I could not see but that I felt. I was not alone...

보육원에서 사회로 내몰리고 난 후, 나에게는 나를 지탱하고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보육원의 전형적인 부산물 이었기에 그저 숫자에 불과한 알려지지도 않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내게는 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느낄 수 있는, 나를 붙들어 주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November 19, 2015
Reflection Day 19

2015년 11월 19일

회상 19일

Memories - We build memories of all kinds. Memories of growing up, memories of spending time with family, memories of traveling, memories of school and friends. We want to record all these wonderful events so we can go back and reminisce. We prefer to reflect on positive experiences. We like memories that bring us good thoughts.

기억 - 우리는 모든 종류의 기억을 쌓아갑니다. 성장의 기억, 가족과 함께한 시간의 기억, 여행의 추억, 학교친구들과의 추억 등 이와 같이 아름다운 모든 기억들을 간직하고 싶어 하고 그것들을 통해 그때를 회상하며 그때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경험들을 회상하기를 더 선호하고 좋았던 생각으로 되돌려 주는 기억을 좋아합니다.

The memories orphans build are far different from children who grow up in normal families. Their memories are of an institution, being subjected to bullying, enduring discrimination, hunger, abuse in every form, but worst of all, memories of isolation. And not only do they build these memories, they must keep them hidden inside. They are not the type of memories one shares. Their memories will not be heard.

고아들의 기억은 일반가정의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시설에서의 기억은 괴롭힘을 당하거나, 차별을 견뎌내고, 배고픔과 모든 형태의 학대인데 그 중 최악은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기억들을 쌓아 갈뿐만 아니라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억들은 그들의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다른 이들은 들어 볼 수도 없습니다.

Last year, I stumbled upon a diary I kept while I was a teenager. I recently read it to better share my thoughts this month on the importance of adoption. It brought back a flood of memories I had somehow erased. It is filled with anguish, despair, loneliness, anger, frustration, hopelessness, pain and unrealistic hopes. It describes injustice and numerous examples of the unfair and horrifying punishment at the hands of my caretakers. I had to remind myself that this was my past, and that I am now safe and not in harm’s way. Even writing this, I struggle to maintain my composure. I felt the weight of the immense grief of my past. It reopened psychological wounds. It reminded me of my origins. I wrote it while I lived with a second family. When I had no other place to go, and no hope of escaping what was almost certainly a life sentence as an orphan. At the time, these pages were the only release I had to pour out my feelings. The diary also touched on a love and hope that sustained and helped me become the person I am today. A hope that someone cared about me from afar in a foreign country...

작년에 우연히 십대 때의 일기장을 발견하여 최근에 읽게 되었고, 입양인의 달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일기장은 내가 어떤 이유로인지 잊어버렸던 기억의 홍수 속으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그 속에는 온갖 고뇌와 절망, 외로움, 분노, 불만, 좌절, 고통과 이루어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소망들로 채워져 있었고 양육자들에 의한 부당하고 불공평한 일들과 끔찍한 체벌들에 대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일기장을 보며 이것들은 지나간 과거일 뿐이며 지금은 그것들로부터 피해 안전한 곳에 있다고 스스로 되뇌어야만 했습니다.

November 20, 2015
Reflection Day 20

2015년 11월 20일

회상 20일

Connections - We are connected to the lives of others in various ways - as a parent, grandparent, sibling, friend, teacher, counselor and many other. We belong to each other. We appreciate the feeling these relationships provide. This feeling promotes our emotional well-being. It creates hope and a feeling of love and inclusion. Most adoptees benefit from this blessing. They become significant to others.

관계형성 -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부모로, 할머니 할아버지로, 형제자매, 친구, 선생님, 상담사 또는 그 외의 많은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이러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소망을 품게 하고 사랑의 감정과 소속감을 갖게 합니다. 대부분의 입양인들이 이런 축복 속에 큰 혜택을 얻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의미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Orphans, on the contrary, have far fewer connections if none. Other than perhaps orphanhood friends, they lack the deep long-term relationships that others take for granted. There is no adult to whom they can rely upon and seek out for understanding, emotional and financial support. And as for any orphanhood friends with whom they remain in contact, these vulnerable, lost souls are mired in the same state of fear and ostracization. Orphan-to-orphan relationships provide limited emotional support. This lack of connection reinforces a feeling of insignificance.
Thankfully, after six miserable months at the first house in which I lived as a maid, I was able to escape that abuse. However, after moving to another house, I quickly realized that I had only changed the nature of my misery. I did not have a room to myself, and the woman I worked for constantly belittled me. But I had nowhere to flee, and no one would have cared if I vanished from the world. Out of desperation, and in an effort to find someone who would just listen to my agony, I wrote a letter. My orphanage was supported by various American sponsors. Each of us orphans had sponsors. (I’ll set aside for now how the orphanage handled sponsor donations, although you can probably guess.) I happened to have had my sponsor’s address. They were Americans, and I didn’t feel threatened or intimidated by them. They seemed like my last hope. My English was not very good at the time, and they did not speak or write Korean, but I wrote them a letter in Korean. I poured out my sorrowful stories. To my great surprise, they did not fail me. In fact, they were God’s hands on earth. True, I could not see them, but our exchange of letters sustained me. They prayed for me, expressed their love for me, and helped me financially. They became my constant source of inspiration. They helped ease my pain. They gave me hope. I was not completely alone and forgotten by the world anymore. The anticipation of receiving one of their letters fueled me. Nothing gave me greater joy. I considered them my American “mom and dad.” They made me feel special. One day, I wrote in my diary, “I know that God promised me to meet you someday and I believe He will keep His promise.” And He did. There is no way I can ever repay or truly thank my sponsor parents for loving me as a person, and not as an undeserving orphan. Without the gift of their hearts, especially when I needed someone so desperately, I believe I may have completely lost the will to struggle forward.

고아들은 이와 반대로 교류하는 사람이 없거나 아주 적습니다. 보육원 동기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사람들에겐 당연한 일인 다른 사람과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데 서투릅니다. 그것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 해주며 정서적,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는 어른이 없기 때문인데 그나마 서로 함께 남겨져 있는, 연약하고 영혼을 잃어버려 두려움과 세상으로부터의 고립과 같은 수렁에 빠진 고아들끼리 서로의 관계를 통해 한정된 정서적 위로를 얻습니다. 이러한 관계형성의 결여는 더욱더 스스로를 쓸모 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합니다. 감사하게도 식모로 지내던 그 끔찍한 첫 번째 집에서 6개월 후에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집으로 옮기자마자 곧 나의 고통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방은 따로 없었고, 일하는 곳의 여인은 나를 끊임없이 비하했습니다. 도망칠 곳도 없었고,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신경 써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 누구라도 나의 이 끔찍한 고통의 소리를 들어주기라도 했으면 하는 노력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있던 보육원은 많은 미국인 후원자들의 후원을 받았는데 각각의 고아들은 후원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예상하시겠지만, 어떻게 보육원에서 후원자들의 기부금을 관리하는지에 대해선 다음을 위해 지금은 잠시 아껴두겠습니다.) 우연히 나의 후원자의 주소를 얻게 되었는데 그분들은 미국인들이었으며 그분들로부터 어떤 위협을 느끼거나 제지를 당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이 내게는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들 역시 한국어로 말하거나 읽지 못했는데도 나는 한국어로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나의 서럽고 슬픈 사정들을 쏟아내었고, 너무나 놀랍게도 그들은 나를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진정 그들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사실, 그분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내 삶을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나를 향한 사랑을 표현해주었으며 재정적인 지원도 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은 내 삶의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고,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내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분들로 인해 나는 더 이상 혼자도 아니었고,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의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 삶의 활력소가 되었고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습니다. 나는 그분들을 미국인 엄마 아빠처럼 여겼고 나를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하루는 나의 일기장에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만나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하나님은 그 약속 을 지키실 것을 믿습니다.” 라고 썼는데 그분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 어떤 자격도 없는 고아일 뿐인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사랑해주신 후원자 부모님께 그 은혜와 나의 모든 감사를 갚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절실하게, 간절히 그 누군가가 필요했던 그때 그분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삶을 지탱하려 몸부림치던 끈조차 놓아 버렸을 것입니다.

November 21, 2015
Reflection Day 21

2015년 11월 21일

회상 21일

Birth Mothers - I want to share my thoughts on an issue which has stirred up anguish and anger among some adoptees. This regards incidents in which the documents of abandoned Korean children were “falsified” to make them eligible for adoption. (Let me be clear that I do not condone this falsification.) It is an important concern worthy of discussion. First, to my knowledge, while this happened in the past, safeguards prevent it from happening now. Second, we need to understand Korean culture, and the difficult circumstance in which unwed mothers find themselves. Third, we need to be aware of why these mothers abandon or relinquish these babies, in many cases without leaving any trace of identity. Last, the vast majority of unwed mothers are teenagers who are not psychologically ready to parent a child. These teens and young adults fear public shame and condemnation. Many of these mothers are the victims of rape. Korean culture is far different from that in the United States. Although the support system for unwed mothers has been strengthened, the potential hardship and stigmatization against single mothers continues.

생모 - 입양인들의 고통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던 문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버려진 한국 아이들에 대한 서류가 입양되는데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 조작(분명히 말하지만 나또한 이런 조작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되었다는 분쟁에 관한 것이었는데 중요하게 고려하고 논의 해 볼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이런 일이 과거에는 일어났으나 현재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예방책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한국의 미혼모들이 그들 스스로 서로를 찾기 힘든 그들의 한국의 문화에 대해 이해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왜 이런 미혼모들이 대부분 그 어떤 단서나 정보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아이를 버리거나 포기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혼모의 압도적인 수는 대부분 심리적으로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십대들입니다. 많은 수의 십대 또는 아직 어린 젊은 엄마들은 성범죄의 피해자들이며 그들은 이것이 알려져 창피함을 당하거나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한국 사회의 인식은 미국사회와는 너무나도 다르며 미혼모들을 돕기 위한 복지제도가 강화되기는 했지만 미혼모들을 향한 잠재적인 고통과 비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Under these pressures, many unwed mothers make the only choice they believed is available to them - to abandon their babies. Some mothers do not leave any trace of the baby's identity, such as name, date of birth, or anything which might connect the child back to the mother. This would risk her secret coming to light, and place in her jeopardy. It would negatively affect her opportunity for education, employment, and marriage. These young women are scared, ashamed, confused, and often very alone. I can’t imagine they are even thinking about whether to leave a message explaining how they would like their child raised - in an orphanage or adopted to a foreign country. They simply cannot comprehend the thought of surviving the level of discrimination they would face in Korean society. This does not mean that they escape carrying a burden of guilt, shame and regret for the remainder of their lives.

이러한 압박감으로 인해 많은 미혼모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은 아이를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엄마들은 이름이나 출생일 또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돌아 올 수 있는 그 어떤 출생의 단서도 남겨 놓지 않습니다. 이것들로 인해 그녀의 비밀이 밝혀질 수도 있고 위기에 처할 수도 있으며 그녀가 학업이나 직장 또는 결혼의 기회를 얻었을 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이 어린 미혼모들은 두렵고 창피하고 혼란스러운데다 외롭습니다. 그리고 나로선 그들이 자신의 아이가 보육원에서 자라거나 해외로 입양되기를 바라는 등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 메모를 남기려 했는지는 짐작할 수 없습니다만, 그들은 단지 한국사회에서 직면하게 될, 차별 속에 살아가야 하는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며, 부끄러움과 후회는 그들의 삶 속에 계속해서 남아 있을 것입니다.

As one would expect, many of these babies have been put up for adoption, largely in America, but also in Europe. And in some cases, as mentioned previously, “falsified” documents were used to enable a child to be adopted. While it is easy to condemn this action, it was done to give the child a chance to grow up in a family or to allow the child to obtain adequate medical care. As someone who grew up in an orphanage, I cannot judge those who participated in this fraud. I do not believe a birth mother would desire her child to grow up in an orphanage rather than a family. Even knowing that a small percentage of adopted children end up in abusive families (just as children are born into abusive families), I believe a birth mother would choose adoption over their child facing the traumatic life of an orphan. As a child, I certainly would have jumped at that chance.
After a number of adoptees critical of their adoptions complained about the fraudulent document issue, the Korean government tightened regulations to guard against this practice. Now, unless a child’s eligibility for adoption is established under stricter scrutiny, that child is doomed to grow up in an orphanage. Do I feel sorrow for the adopted child who learns as an adult that his or her birth mother, father or other relative now claims that they would have kept and raised them but for the deceit? Yes, of course. It is a tragedy for the parent and the child. (But I also grew up in Korea, and in my opinion based on my understanding of the culture and the minds of Koreans, such a claim made years after the fact in response to being confronted by someone abandoned as a child may be based more on face-saving than the truth.) But now many children are paying the price of ensuring that such a thing does not happen to a small percentage. There is no easy answer. But let me make one thing clear, the answer is not dooming these children to institutions. I cannot imagine that such a cruel fate would be the desire of any birth mother or father.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많은 수의 아이들이 가장 많게는 미국으로, 또한 유럽으로, 때로는 이전에 언급되었듯이 입양에 적합한 판정을 받기 위해 서류조작을 통해 입양되어 왔습니다. 이런 행위는 쉽게 비난 받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가정에서 양육되거나 충분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육원에서 자란 사람에 따르면, 나는 이런 조작행위에 참여한 사람을 비난 할 수 없습니다. 나로선 낮은 비율로 아이들이 학대 받는 가정에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때로는 아이가 학대 받는 가정에서 태어나기도 것처럼 말입니다.) 친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가정이 아닌 고아원에서 자라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고아로서 충격적인 삶을 마주하기 보단 입양을 원하리라 믿습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나라면 반드시 이 입양이라는 기회를 선택할 것입니다.

자신의 입양에 비판적인 많은 입양인들이 입양서류가 조작된 것에 항의를 한 이후에 한국 정부는 이런 관행에 대해 법규를 강화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엄격한 조사를 거친 후 인증을 받아 입양 적격판정을 받지 못하면 아이들은 보육시설에 내보내지는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친부모라고 주장하며 키워주던 분들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어른이 된 후 알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슬픔을 느껴야 하나요? 그럼요, 물론입니다. 그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입니다. (이런 사태는 한국에서 자라난 경험과 한국인들의 문화, 정서를 바탕으로 한 나의 관점으로 볼 때, 아이일 때 버려진 사실에 관해 진실을 알려주기 보다는 체면을 세우기 위해 했던 누군가의 대답 때문에 시간이 흐른 후 이런 상황에 벌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적지 않은 비율의 아이들이 입양 적격 인증을 받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쉬운 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할 것은, 보육시설에 아이들을 맡겨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게 하는 것은 결코 답이 아닙니다. 나는 그 어떤 친엄마 친아빠라도 아이의 이런 잔혹한 운명을 원한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November 22, 2015
Reflection Day 22

2015년 11월 22일

회상 22일

Home - A home is a place where everyone takes refuge. It provides a place for family, friends, and relatives to come together for laughter, comfort, and holidays. Children escape to their rooms to relax, play, and sleep. When children leave for college, employment or marriage, they know that they have a home to which they can always return. Simply knowing that place of security exists provides them confidence and a sense of belonging.

집 - 집이란 누구에게나 피난처와 같은 장소입니다. 집은 가족들, 친구들, 주변사람들이 와서 함께 웃고, 위로와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며 아이들은 휴식을 취하고 놀고 잠자기 위해 자기 방으로 피합니다. 아이들은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장, 결혼 등으로 떠나게 될 때 자신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을 알며 단지 그들에게 안전한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자신감과 소속감을 얻습니다.

Orphans have no home. Yes, they have the institution to call home while growing up, but once they age out, what little sense of place and security it provides vanishes. Children do not typically have the privilege of enjoying their own room, or a room to share with a sibling. They live in a barracks-like room with rows of “dressers” and a large floor space. They share everything. They do not own toys. And when they age out, they are stripped of even this. Many become homeless in a society that rejects their value. Many end up working in factories which provide room and board. It is also common for them to work as live-in maids. They might even fall into prostitution. Finding a marriage partner is difficult, but once married, there is obviously no family support.
In my orphanage, we had nothing of our own. Our “home” was essentially a large room. We didn’t have western beds. We slept on thin pads which we spread on the floor each night, and stacked up in the morning. When I left the orphanage, I had no interest in ever returning. In the first two homes I worked as a live-in maid, they did not provide me with my own room. In the third home I worked as a maid, I was finally given my own room, but it was the size of a closet. There was just enough space for me to lay down my blanket. This was my room for almost a year. But, it was a place where I could be at peace. It was a place where I felt secure. It was a place for me to freely shed my tears. It was my place of comfort. It was a place to remind myself of God’s love. As someone who grew up never having a place of her own, I felt very privileged to have this very first “home.” I lived there almost a year while I finished high school.

고아들에겐 집이 없습니다. 자라는 동안 시설을 ‘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들이 성년이 되어 퇴소를 하는 순간 내가 머무르는 곳이라는 느낌과 안정감은 이내 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보육원 아이들에게 개인적인 내방이나 형제자매와 함께 쓰는 방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주어지지 않으며 군대 생활실과 같이 서랍장이 줄지어 있는 넓은 방 안에서 생활 합니다.모든 것들을 공유하는데 내가 소유할 수 있는 내 장난감, 인형이란 없습니다. 그들이 성년이 되어 시설에서 퇴소를 할 때는 이것들마저 빼앗기고 맨몸으로 나옵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존재나 가치를 무시당하는 사회에서 집 없이 떠도는 사람이 되고 결국엔 숙식을 제공하는 공장에서 일하거나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성매매에 빠지기도 합니다.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은 어려우며 결혼을 하더라도 알다시피, 가족들의 지원은 없습니다. 내가 자란 보육원에선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물품 없었으며 우리의 ‘집’은 그저 커다란 방이었습니다. 침대 없이 매일 밤마다 얇은 요를 바닥에 깔고 잤으며 아침엔 개서 쌓아두었습니다. 내가 보육원을 퇴소할 땐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집에서 식모로 일할 땐 내 개인의 방을 제공받지 못했었고, 세 번째 집에서 일할 때 드디어 내방이 생겼습니다. 담요 한 장을 깔면 가득 차는 옷장만한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곳에서 일 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 방은 내가 안도감을 느낄 수 있고, 자유롭게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며, 나의 안식처이자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일 년 가까지 지낸 이방은 한 번도 내방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얻은 첫 번째 ‘집’이었습니다.

November 23, 2015
Reflection Day 23

2015년 11월 23일

회상 23일

No Trusted Advisor - Knowing someone you can trust and count on for advice can have a significant influence on your life. We generally put parents and other trusted relatives into this category. These are people who will put our welfare first and foremost. They will not be considering how they might take advantage of us. Our best welfare is their concern.
When orphans age out of their institution and are thrown into society, they are at the mercy of those who are not concerned about their well-being. Their status as an orphan hampers their ability to find a job, and they are vulnerable to those seeking to take unfair advantage of them. No one is there to advise them and help protect their interests. They lack the support system inherent within the traditional family structure. Instead, they are left to navigate their path alone.
As soon as I finished high school, I left my maid job to seek normal employment. Of course, when I worked for the families, I did not get paid anything beyond school expenses. Without any funds, my options were limited. I found myself at the mercy of someone to find me a job. My new employer and this person agreed on my salary without ever talking to me. The job also included room and board. My pay was to be deposited directly into my bank account. It was a fraction of what I deserved, but I was an orphan, and in no position to bargain, especially when I had to live with my employer. I labored 12-14 hours a day, six days a week. I would deliver office supplies to various locations by foot. This was not the worst of it. I immediately realized that my position entailed the humiliation of confronting the owner’s continual sexual assaults. I immediately dreaded my situation. I dreaded going to work with him every morning. And I also hated the fact that even after struggling to complete high school, I was working in a position more suited to an elementary school graduate. Respect, fairness nor any sense of kindness existed in my world. My world was a humiliating nightmare. It was here in this first job after high school that I realized I would never find a job which would allow me to perform to my fullest potential, or receive fair pay for my work. And I had no one to advise me or help me address the abusive behavior of my employer. I remained silence because this was the destiny of my past, current and future life as an orphan.

믿을 수 있는 조언자의 부재 - 신뢰할 수 있거나, 나에게 조언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당신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모나 주변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이런 범주에 넣으며 사람들은 이런 분들을 나은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순위로 둡니다. 그분들은 우리를 이용해 어떤 이득 취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우리가 잘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고아들이 성인이 되어 보육시설에서 퇴소하고 사회로 내몰릴 때 이 아이들은 그들이 잘 살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됩니다. 고아라는 사실이 취업 하는 것에 방해가 되기도 하며, 자신들이 부당하게 이용당하고 있는지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도와주지 않으며, 전통적인 가족 구조 속에 내재하는 부족한 지원체제 안에서 그들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내버려져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반적인 직장을 찾기 위하여 식모살이를 그만 두었습니다. 물론 그 집에서 일하는 동안 학교 등록금 외에는 어떤 돈도 받지 못했고, 자금이 없던 나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나는 내게 일자리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내게는 급여에 대한 언급 없이 새로운 사장에게 내가 그 곳에서 일하는 것을 동의했습니다. 이 일 또한 숙식이 제공되었습니다. 급여가 은행계좌로 곧바로 송금되었는데 내가 일한 분량의 일부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아였고, 특히나 사장님 집에 얹혀사는 동안에는 급여를 협상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사무용품을 여러 지역에 걸어서 배달하는 일을 하루 12-14시간씩 주 육일 동안 했는데 이것이 최악이 아니었습니다. 곧 내 위치가 사장의 지속적인 성폭행에 시달리는 치욕적인 상황을 함께 수반해야 하는 자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즉시 내 상황이 두려워졌고 아침마다 그 사람과 출근하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몸부림 쳤던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나 어울릴 만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나의 세계는 존중, 공정함, 친절, 다정함과 같은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그저 치욕스러운 악몽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얻은 직장으로 인해 나의 잠재력 모두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거나 내가 일한 만큼 공정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을 얻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사장의 학대행위에 대해 항의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없었기에 이것이 고아로서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삶의 운명으로 생각하고 침묵 속에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November 24, 2015
Reflection Day 24

2015년 11월 24일

회상 24일

Dreams - Children dream of becoming someone. They dream of accomplishing something great. The opportunity for them to achieve their dream is possible with the support of family, community and others who support them. Education enables them to explore their dreams and further improves the chance they may come true. Orphans have dreams too. However, their dreams are not encouraged, or even acknowledged. With each passing year, their dreams fade away, and their focus becomes how to survive each day. The weight of the label “orphan” bears down on them. With no one supporting their ambition, their low self-esteem and rejection from mainstream society further makes achieving their dreams unrealistic.

꿈 - 아이들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꿈꿉니다. 또 무언가 위대한 것을 이루기를 꿈꿉니다.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회는 부모와 사회 그리고 이 아이들을 지지하는 다른 사람들의 지원으로 가능해집니다. 교육은 그들이 꿈을 향해 항해하고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인정받지 못한다면, 해가 지날수록 그 꿈은 사라지고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고아라는 꼬리표의 무게는 엄청난 무게로 이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으며 아이들이 꿈을 갖는 것을 도울 사람이 없다는 것과 낮은 자존감, 주류 사회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이 이들의 꿈을 더욱더 비현실적으로 만듭니다.

In the survey I helped conduct last October, my orphanage sisters described their childhood dreams as wishing to become a teacher, psychologist, artist, missionary, nurse, and becoming wealthy (we were always hungry and had no personal possessions). None of them were able to achieve their dreams. Not one. Instead, their reality became to survive each day in a hostile environment. Their reality was to work day and night to provide for their family. The stigma they bore as orphans cut short any chance of reaching their dreams. My dream, strangely enough, was to escape from Korea. I knew that no matter how hard I worked, I would find nothing but rejection and disappointment. I also dreamed of having a family - a mom and a dad. And I knew this would never happen in Korea. My dream seemed unlikely, but I held onto it.

내가 도왔던 지난 10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의 보육원 동기(자매)들은 어릴 적 꿈이 선생님, 심리학자, 예술가, 선교사, 간호사 그리고 부자(우리는 항상 배가 고팠고 개인의 소유물이 없었습니다.)가 되는 것이었다고 서술했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그 어느 것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으며 현실은 그 꿈과는 반대로 냉담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것이었고 고아라는 오명은 그들의 꿈에 다가가는 것을 가로 막았습니다. 나의 꿈은 이상하지만, 한국을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 나는 이 꿈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찾은 것은 사람들의 외면과 절망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빠와 엄마, 가족을 갖는 꿈도 있었는데 물론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꿈은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이루어졌습니다.

November 25, 2015
Reflection Day 25

2015년 11월 25일

회상 25일

Discovery - Compassion, kindness, sacrifice, humility, and a caring heart are qualities we all wish to possess, and that we wish our children to develop. But very few of us develop these qualities to the extent that we willingly and regularly place others before ourselves. For an orphan to discover someone with these qualities is life transforming.

발견 – 연민, 친절, 희생, 겸손, 섬기는 마음은 우리 모두가 갖기를 바라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높은 가치의 본성(기질)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 아주 적은 수만이 이런 본성을 더 넓히기 위해 스스로를 계발하고, 대부분은 한결같이 우리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룹니다. 고아 아이가 이런 본성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그야말로 삶 자체가 바뀌는 것 입니다.

The relentless physical labor and stress of dealing with my abusive employer soon caught up with me. My back ached, yet I could not cease my work. I could no longer tolerate my predicament. So, with no money, no home and no prospects, I quit my horrifying job. I ended up on the doorstep of Molly Holt at Il San. At that time, the Holt Ilsan Center cared for about 350 physically and mentally challenged residents. Molly took me in and did not ask for any payment in return. At first, I felt very out of place. It was strange to have my own room. It actually felt odd not living under someone dominating my life and treating me like a slave. No one belittled me. I was safe there. I was also surprised by the amount of care the residents received. They were treated with love, care and affection by their house mothers and staff members. There were no signs of distress among the residents. I was amazed. I had no idea such a world could exist for orphans. Molly Holt had devoted her life to ensure that these “unwanted” and ostracized children received the care they deserve. To this day, Molly continues to devote her life in voluntary service (Yes, she’s been a volunteer her entire life!) to these children. In Korea, it was a shame to have a disabled baby; this caused many families to abandon them. However, at Holt’s Il San Center, they were treated with love, affection, decency and respect. They were treated like “normal” children. The facility protected them, and they thrived. I do not believe that a government operated facility could provide this level of love and care. The residents were genuinely happy and content. Witnessing this, life just didn’t seem fair. I and my sisters were brought up in a different world, a world of fear and abuse. I felt cheated.

혹독한 육체노동과 사장님의 학대로 인한 스트레스는 곧 나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 이었지만, 등의 통증으로 인해 이 곤경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끝내 돈도 집도 그 어떤 기약도 없이 이 끔찍한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일산 홀트 복지 센터 안에는 350여명의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센터를 찾아가 현관 끝에 서있던 그때, 몰리는 내가 다시 센터로 돌아온 것에 대한 어떤 꾸짖음도 없이 나를 받아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내방이 생긴 것도 생소했고 누군가에게 지배를 당하거나 노예 취급을 받지 않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그곳에선 누구도 나를 비하하지 않았고, 안전했으며 또한 그곳의 원생들이 보살핌 받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들의 보모와 직원들은 사랑과 보살핌, 애정으로 나를 대해 주었으며 원생들에게서도 고통의 징후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고아에게 이러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몰랐기에 너무 놀라웠습니다. 몰리 홀트는 이런 ‘세상이 원치 않는’ 그리고 당연히 받아야 할 보살핌으로부터 외면당한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그녀의 삶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날까지 이 아이들을 위해 봉사 활동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아를 갖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기에 많은 가족들이 아이들을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일산 홀트 센터에서는 이 아이들을 사랑과 애정, 친절함과 존중함으로 마치 장애가 없는 ‘일반인’과 같이 대했습니다. 시설은 그들을 보호했고 그들은 번성해 갔습니다. 아마 정부에서 이 기관을 운영했다면 이와 같은 수준의 사랑과 보살핌을 베풀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생들은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만족해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목격한 나로서는 나와 보육원 동기들은 공포와 학대 속에 자라온 것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습니다.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I watched Molly train each new house mother how to care for these special needs children. Molly had me help her with the children who came to the facility. Molly would train the children to feed themselves and take care of their personal needs. She was so patient with them as they worked toward gaining these skills. Neither Molly nor others looked down on the residents or treated them differently. I was in awe. I had finally discovered a safe and peaceful place. Molly loved and cared for these children who had been rejected by their own parents. She became their uhnni (big sister). It was also at this time I discovered that many orphans were adopted into foreign families, even disabled children. And, of course, it saddened me that I had been denied this opportunity.

몰리가 새로 온 보모들에게 특별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개별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녀와 함께 시설에 들어온 아이들을 돕도록 했습니다. 몰리는 그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먹고 개인적인 욕구를 해소하도록 훈련시켰고 아이들이 이런 기술들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인내심으로 기다려 주었습니다. 몰리나 그 누구도 이 아이들을 무시하거나 다르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그들을 향한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를 발견한 것입니다. 몰리는 친부모에게 배척당한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폈고, 그들의 언니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시절, 나는 많은 고아들과 심지어 장애를 가진 아이도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한편으론, 이런 기회가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November 26, 2015
Reflection Day 26

2015년 11월 26일

회상 26일

A Thankful Heart - Thanksgiving gives us the opportunity to remember the things we most appreciate. Time to reflect on people who have influenced our lives. Time to recognize the blessings we have. It is also a time when families gather to celebrate with food and laughter. These special times create special memories.

감사한마음 – 추수 감사절은 우리에게 가장 감사해야 할 것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준 사람들을 회상하기도 하고 우리가 가진 것들이 하늘의 축복임을 감사하기도 합니다. 또한 가족들이 모두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웃으며 이날을 기리기도 하고, 이 특별한 날은 특별한 추억들을 만들어줍니다.

Because our orphanage was small, the 26 of us grew up together enduring same abuse. When we were cast out into the world, our struggles were similar - our youth and naïveté, the stigma of being an orphan, and having no place to return or seek refuge. The only employment we found was menial labor. We received no support from the government or any other source. But we did have an orphan sisterhood. Even though we were spread out, and communication could be difficult, we tried to maintain contact. Even to this day, they continue to stay in touch because that is all they have as a “family” other than their husband’s family. They are their own support system, pitching in for one another when they can. For example, on one occasion, a sister lost a finger at her factory job. She didn’t have enough to cover her medical bills or survive during the time needed for recovery. The sisters helped her survive the ordeal. When another had a baby, with no parental support, the sisters were there to support her. When someone is in need of a place to stay due to an abusive husband, or is sick, sisters offer their homes to escape or recover.
On the occasions when these women get together in a tiny apartment, they do not dwell on the abuse or unjust treatment of their past, or the challenges of their continued existing status as an orphan (I know it’s so foreign for an American to understand how a middle-aged adult can still be judged as an orphan, but Korea is a society where bloodlines are critical both socially and economically). Instead, they cherish the time they can get together. They share food, encourage and listen to one another, and show each other compassion. They are bonded by their fate. They have lived a life of disadvantage but they possess pure hearts.

내가 지내던 보육원은 작았기 때문에 우리들 26명은 같은 학대를 함께 이겨내며 자라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보육원 바깥세상으로 내쫓겼을 때도 우리는 어렸으며 순진했으며 고아란 낙인이 찍혀있고 되돌아갈 곳이나 피할 곳도 없었기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찾을 수 있는 직장은 천한 노동일뿐이었습니다. 정부나 어떤 단체로부터의 후원도 없었으나 보육원 동기들끼리의 형제자매와 같은 동기의식이 있었습니다. 흩어지게 되고 연락하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지속적으로 연락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우리는 남편들의 가족들 보다 더 진짜 같은 단 하나의 ‘가족’ 이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로 연락을 하며 서로를 돕기 위한 자체적인 체계를 갖추고 기회가 될 때 마다 서로를 위해 협력합니다. 예를 들어, 한번은 우리 중 한 자매가 공장에서 일을 하다 손가락을 잃게 되어 치료비를 감당하고 회복기간 동안 생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웠는데 동기들이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부모의 도움 없이 아기를 낳게 되었는데 그때도 동기들이 도왔으며 또 다른 이는 남편의 학대로 머물 곳이 필요했을 때나 아플 때 동기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피해있거나 아픈 것을 나을 수 있도록 병간호했습니다.

그들이 좁은 아파트에 모여 살았을 때 즈음엔 과거와 같이 학대나 부당한 대우 그리고 고아라는 이유로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며 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중년의 성인이 되어서도 고아라는 것으로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미국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출생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신에, 시간이 날 때 마다 함께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음식을 나누고, 격려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서로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운명으로 묶여졌습니다. 불행한 삶을 살아왔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To me, this is the epitome of what Thanksgiving is all about. Despite what little they have, their concern and focus is on their sisters. They will always exist at the bottom of Korean society. They will never gain fame or economic security, but they appreciate what they do have. They share what little they have. I am thankful for the courage these women have to look for ways to help each other, even when it means donating money they cannot afford to another in greater need. I am thankful for their kind hearts. I am thankful that I can be a voice for them. This is my Thanksgiving story.

나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가장 완벽한 본보기 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은 적지만, 동기를 걱정하고 관심의 초점을 동기들에게 둡니다. 이들은 언제나 한국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으로 살아가게 되고 명성을 얻거나 경제적인 안정을 취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적은 것을 가졌지만 그 적을 것을 나누기도 합니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돈으로 후원할 여유까지는 안 되지만 서로를 돕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이 여성들을 응원하며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친절한 마음에도 감사하고, 내가 그녀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것이 나의 추수 감사절 이야기 입니다.

November 27, 2015
Reflection Day 27

2015년 11월 27일

회상 27일

Bloodlines - Although there are “matchmakers” in every country, they are not common in America. People connect socially, date, and then the relationship might lead to marriage. While someone’s education, race, wealth or family background may be factors which create similar world views, and increase the chance of success in the relationship, differences among these factors are not unusual. In America, people have an opportunity to pursue a relationship with anyone they desire.

혈통(출생) – 모든 나라마다 ‘중매쟁이’ 들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이나 연애를 통해 만나고 그 관계는 결혼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학력, 인종, 재산 또는 집안 등이 어쩌면 비슷한 가치관을 만들거나 서로의 관계를 성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높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조건들이 서로 다른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미국에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In Korea, adult orphans are prohibited from dating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No matter the orphan’s educational level, quality of employment (both of which are unlikely to be very high) or physical appearance, concern over the bloodline would prevent the orphan from marrying into most families. If parents discovered one of their offspring beginning a relationship with an orphan (as unlikely as this would be), they would put an end to it. Most orphans would not even consider trying to begin a relationship with a “normal” member of society. The manner in which most orphans find a spouse involves someone introducing them to someone who is in a similar situation or worse. The two do not really date. They are introduced, meet on one or more occasions, and then more often than not, the orphan will accept the match out of desperation or obligation. Of course, women in this situation are always concerned about the possibility of abuse.

한국에서 성인고아들은 사람들 대부분과 연애하는 것을 금지 당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선 고아들은 학력이 어떻던, 직장이 좋던 나쁘던, 외모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출생을 문제로 결혼을 반대합니다. 만약 어떤 부모들이 자식이 고아와 연애를 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 끝내버릴 것입니다. 대부분의 고아들은 사회의 ‘일반인’과 연애를 시작하려는 시도조차 고려해 보지도 않습니다. 대부분의 고아들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나쁜 처지의 사람들을 배우자로 삼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피차 진짜 연애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소개를 받고 한번 또는 몇 번 더 만나본 후 대개는 포기하거나 상대를 받아들입니다. 물론, 여성들은 이 상황에서도 언제나 학대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This was the case for my orphan sisters. Almost all of their marriages were arranged. Dating was rare. First of all, they all worked in either a factory or as a maid. These jobs gave them very little opportunity to meet other people. The men they married were farmers, those from poor families and/or those with little education. Most of my orphan sisters struggle in their marriages, particularly with their husbands’ families. (A number of their husbands actually force them to lie and fabricate a history to tell their family, so their family will not know their daughter-in-law is an orphan.) Many of my sisters continue to face abuse from their husband or husbands’ families. Their husbands tolerate this, and their wives are essentially slaves to his families. Remember that my orphan sisters have no place to take refuge. No family to whom they can go to and ask for help in defending themselves against this treatment. They are helpless.

이것은 나의 보육원 동기의 사례인데 대부분의 동기들은 중매로 결혼했습니다. 연애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공장에서 일하거나 식모로 일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보육원 동기들이 결혼한 남편들은 학업을 잘 마치지 못하거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농부들이었고 그 중 대부분은 특히나 남편의 가족들 때문에 힘겨운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실제로 몇몇 남편들은 아내에게 출생에 관한 내용을 거짓으로 말하거나 조작하라고 강요를 해서 남편의 가족들은 며느리가 고아라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많은 동기들은 지속적으로 남편과 남편의 가족들에게 학대를 당하였으며 그들의 남편들은 아내가 자기의 가족들에게 사실상 노예취급 당하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나의 동기들은 도망갈 피난처가 없었다는 것과 찾아가 이런 대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할 가족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들은 무력하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During the time I was working at Holt’s Ilsan Center, I dated a man who knew I was an orphan. Soon into our relationship, I realized that he was comfortable slapping me on the face which humiliated me. I was afraid of him and wondered what he might do next. I found the strength (thankfully, I was now living in safety with Molly Holt) to stop seeing him. The second time involved a woman who knew I was an orphan. She saw me as someone with no likely prospects, and she wanted me to marry her nephew who was from a poor family. He was much older than me. I met with him twice. He made it clear that he was eager to marry me, but I had no interest in him. The notion of getting married to this man or anyone didn’t feel right. I wanted more from life than this common fate.

내가 홀트 일산 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내가 고아인 것을 아는 사람과 연애를 했습니다. 나는 곧 이 사람이 내게 모욕감을 주는, 얼굴에 손찌검을 하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두려웠고, 또 그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되었습니다. 나는 담대함을 찾고 (감사하게도 그 당시엔 안전하게 몰리 홀트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두 번째에는 내가 고아인 것을 아는 한 여성분이 관여하였는데 그녀는 나를 여느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전망이 없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가정의 자기 조카와 결혼하기를 원했는데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 남자와 두 번을 만났습니다. 그 남자는 나와 간절히 결혼하고 싶어 했는데 내가 그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는 내 삶에서 이런 평범한 운명보다 그 이상의 것을 원했기에 그 남자 또는 다른 누구와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November 28, 2015
Reflection Day 28

2015년 11월 28일

회상 28일

The Orphans’ Ceiling - As we mature, we learn values such as fairness, integrity and trust. In our employment, we expect that our dedicated work will be recognized, appreciated and rewarded by our employers. We also expect equal treatment on the job regardless of our background. At least in United States we do, but not necessarily the case in Korea.

고아들의 한계 – 어른으로서 우리는 공정함, 진실, 신뢰와 같은 가치들을 배우게 됩니다. 직장에서는 내가 헌신적으로 일을 하면 인정을 받거나 고마워한다거나 보상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며 또한 우리의 백그라운드가 어떠하든 똑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렇게 하는데 한국에서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The values of fairness, integrity and trust are more difficult to learn growing up in an institution. Orphans have a difficult time grasping these concepts because they grow up without expecting others to imbue these values onto them. Orphans grow up expecting to face prejudice, discrimination, abuse and ostracization. And their expectation becomes their reality. The opportunity for adult orphans to succeed in a white-collar job is grim.

보육시설에서는 공정함, 진실함, 신뢰 같은 가치를 배우기가 더 어렵습니다. 고아들이 다른 사람들이 이런 가치들을 나에게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가치들의 개념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고아들은 편견, 차별, 학대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을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런 예상은 현실로 나타납니다. 성인 고아들이 사무직과 같은 분야에서 성공의 기회를 얻기란 매우 희박합니다.

As I settled into “life” at Ilsan Center, I worked as a volunteer. I was given a position within the administrative office. I lived in Molly’s home, but worked in the office just like the employees, only I was an unpaid volunteer. My fellow employees, of course, were paid for their services. Out of a sense of obligation, however, the department did occasionally gave me pocket money. Although my job consisted of basic clerical work, I enjoyed it. By performing my job well, I hoped that the director at Ilsan Center would recognize my abilities and offer me a paid position. I waited patiently. One month lead to the next, and the months turned into years. Finally, a job opened. I was looking forward to finally being offered a real paid position. I met all the qualifications. I was so hopeful. To this day I vividly remember the director calling me into his office. He got right to the point; he told me that I could not have the job because I was an orphan. He said it in those direct terms. Almost three years of hard work suddenly turned into ashes. This was the moment I realized that the world, even within this social welfare institution, would never fully accept me. There are no words to describe how much I hated my status as an orphan. It was a curse I could not cure. It was so wrong! So unjust! It was as though the director had poured cold water over me and told me that I was worthless. I sobbed uncontrollably and helplessly. I was denied my humanity by people who were supposedly dedicated to the social welfare of disabled orphans. I was not a person; I was an orphan. I felt cheated by my employer. Instead of being rewarded for all of my hours of hard work, he punished me simply because of my status as an orphan. The director had taken everything I had worked so hard to achieve, my modest dreams, and crushed them using one single word: Orphan. I was rapidly losing my hope and desire to continue...

내가 일산 센터에 자리하고 있는 동안 관리 사무실에 배정을 받아 자원 봉사자로 일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몰리의 집에 살면서 저만 급여 없는 자원봉사자이면서도 마치 직원처럼 일을 했습니다. 당연히 동료들은 자신이 봉사한 만큼 월급을 받았습니다. 당연한 책무를 져버린 것이었지만, 부서에서는 가끔씩 저에게 용돈을 주었었고 나의 업무는 가장 기초적인 사무였지만 그것을 즐겼습니다. 내가 일을 잘하면, 홀트 일산 센터장이 나의 능력을 알아보고 급여가 있는 자리를 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다음해로 넘어가고 있었는데 마침내 급여가 있는 자리가 생겼습니다. 나는 그 자리가 열리기만을 기다렸고 모든 자격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센터장이 그의 사무실로 나를 불러들인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가 바로 요점만 이야기 했는데 요점은 시설장의 임기 동안에는 내가 고아이기 때문에 직장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삼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일이 한 순간에 허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때서야 심지어 이 사회복지 시설에서조차 내가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고아라는 것이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건 내게 회복할 수 없는 저주였습니다. 너무나 잘못되고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그 시설장은 내게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고 심지어 내게 하찮은 존재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장애 고아들에게 헌신적이었던 사회 복지사들에게 조차 내 인간의 존엄성이 외면당했다는 사실에 주체할 수 없이, 무기력하게 흐느꼈습니다. 나는 그들에겐 사람이 아니었고 그저 고아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일한 시간들에 대한 보상 대신에 고아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되어 사기를 당했다고 느껴졌습니다. 시설장은 내가 열심히 일해 성취한 것들도, 작은 꿈들도 고아라는 한단어로 모두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나는 꿈과 소망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November 29, 2015
Reflection Day 29

2015년 11월 29일

회상 29일

A Miracle - One blessing of having a family is that you can always depend on their support. A family is a safeguard; it is a security blanket. This security and support enables one to pursue his or her goals.

기적 – 가족이 있다는 것은 당신이 언제나 가족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축복입니다. 가족은 안전담요(주로 미국의 어린아이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싶을 때 마다 껴안는 담요)와 같은 보호 장치입니다. 이러한 안전과 지원은 아이들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One curse of being an adult orphan is you lack this support. You live your life in limbo. You live it in silence. Achieving one’s dreams while floating in this state is impossible. Only a miracle can save you. I was alone again. I lived with Molly for the time being, but I knew that I would need to venture out into a frightening and unwelcoming world all by myself. I refused to be a maid, and I refused to look for a job that did not require my level of education. I wanted a better opportunity. But with no place to move and no money, I was having a difficult time forming a plan to move out of Holt Ilsan Center. It was during this time that I met a family from Oregon. They were visiting with their three Korean adoptees. In fact, one of their daughters was from Holt Ilsan Center.
Occasionally, I gave foreign visitors a tour of the facility. I met countless adoptees and their families doing so. The families would come and go. Each time they left, I felt envious of the adoptees because they looked so happy, loved, educated, and most of all, they had a family of their own. The family from Oregon was the same. I showed them around the facility and then said goodbye, watching them depart with my usual feeling of jealousy and sense of unfairness.
Molly saw absolutely no hope for me in Korea. She felt bad for me and my orphan sisters. She knew that Korean society would not allow us to truly assimilate. She understood our struggles. I was not lucky enough to be adopted at a young age. There was nothing she could do other than voice her frustration to visiting foreigners, which she did. In fact, she never ceased to mention my unfortunate circumstance, and this was true with the Oregon family. A few days after they left, Molly told me that the family, the Mayberry family from Oregon, was interested in helping me.
I was in shock. I was in disbelief that this family who already had three Korean children would want to help me. And they did not just want to help me, they wanted to sponsor me and bring me to the U.S.! I did not know how to even absorb this news. The possibility that my dream of moving to the U.S. now seemed real, but it also seemed too good to be true. I could not believe that someone would be actually be interested in giving such an incredible gift to this worthless orphan. I could not believe that someone would try to change the course of my life forever!
I had no money, no job, and only a high school education. An adult orphan getting a chance to go to America is like finding a needle in a haystack. I was excited and scared at the same time. With many people praying for my success, support from the Eugene Holt office, and especially the persistent effort of Colleen Mayberry, I was blessed to arrive in America in 1987. The Mayberry family met me with open arms. And once I adjusted into and became a part their family, they extended their offer to formally adopt me as their daughter and sister. They were my miracle. They were God’s hands working on earth. Since that time I have been taking comfort in being a part this wonderful family and all the support and comfort it provides. After 23 years of being orphan, I finally had a place to call home. I finally had a family with people I could call mom and dad, sisters and brothers because I was no longer an orphan.

성인 고아가 된다는 저주와 같은 삶에는 이러한 지원이 거의 없고 침묵 속에 살며 삶이 불안정한 상태가 됩니다. 이렇듯 방황하며 표류하는 상황에서 꿈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적이 일어나야만 이 상황에서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또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당분간은 몰리와 함께 살았지만, 다시 무섭고 나를 반기지 않는 세상으로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식모가 되는 것과 제가 교육받은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직장은 거절을 했습니다. 더 나은 기회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사할 집도 없고 돈도 없었기 때문에 일산 센터를 떠날 계획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는 기간 동안 미국의 오리건 주에서 오신 한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3명의 한국인 입양 자녀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왔는데 그 중 한 명이 홀트 일산센터 출신 이었습니다.

나는, 때때로 외국인 방문객들을 위해 시설의 안내를 했었는데 셀 수 없는 입양인들과 입양가족들이 방문했습니다. 입양가족들이 오고 갈 때 마다 입양된 분들이 행복해 보이고, 사랑을 받고, 잘 교육 받아 보였으며 무엇보다 그들이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오리건 주에서 오신 가족들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시설 안내를 마친 후 배웅 인사를 하며 평상시처럼 부러움과 불공평한 감정을 느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소 몰리는 나와 내 보육원 동기들을 안쓰럽게 여겼고 한국에서는 내게 정말 희망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한국사회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우리의 힘겨운 몸부림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겐 어릴 적에 입양되는 행운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해왔던 것 같이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안타까운 생각을 말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나의 불행한 상황을 말하는 것을 그친 적이 없었고 이 오리건 주에서 오신 가족들에게도 그러했습니다. 그 가족들이 떠나고 며칠 뒤 몰리가 오리건 주에서 오셨던 메이버리 가족이 나를 돕는데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이미 3명의 한국인 입양자녀들이 있는 가족이 나를 돕고 싶어 한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저를 돕고 싶은 것이 아니라, 후원자가 되어주고 나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미국으로 떠나고 싶었던 나의 꿈이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한편으로는 현실이라 하기 에는 너무 좋았던 것입니다. 이 쓸모 없는 고아에게 이런 믿을 수 없는 선물을 주기 원한다는 것과 누군가 나의 인생의 진로를 영원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외에는 돈도, 직업도 없었습니다. 성인고아가 미국에 갈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나의 성공을 위한 많은 분들의 기도와 유진 홀트 센터의 지원, 콜린 메이버리씨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987년에 축복 속에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메이버리 가족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가족의 일원으로 적응하던 어느 날 공식적인 딸과 형제자매로까지 저를 받아주었습니다. 이 가족은 저의 기적이고 이 땅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그때부터 나는 이 아름다운 가족과 이들이 제공해주는 지원과 편안함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23년 동안 고아로 지내온 후에야 마침내 집이라고 부를 곳을 얻었고 엄마 아빠, 오빠, 동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족을 얻었습니다. 더 이상 나는 고아가 아닙니다.

November 30, 2015
Reflection Day 30 - National Adoption Month

2015년 11월 30일

회상 30일 – 입양인의 달

Epilogue - My journey for the past 29 days has been challenging, but I also hope it has been inspirational and educational. My initial goal was to compare the opportunities of an orphan after adoption with those of an orphan who remained in Korea and grew up in an orphanage. What I did not anticipate was the degree to which I would be exposing my life journey in such an intimate way.

후기 – 지난 29일 동안의 여정은 어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자극을 주고 교육적인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나의 처음 목표는 한국의 보육원에 남겨져 자라나는 고아들과 입양된 이후를 비교하는 것이었으며 내가 살아온 여정을 지극히 사적인 방법으로 공개하여 평가 받는 것을 예상하지는 않았습니다.

My desire is for adoptees who have struggled with issues in their adoptive families to consider what their circumstance would realistically have been had they not been adopted. Even though we all share different views, my view is that I am thankful that adoptees were given an opportunity in life. I also hope that we might understand and empathize with the thousands of young and adult orphans who currently struggle within a society that does not value them. Adoptees have avoided the pain and stigma of living as an orphan.

저의 바람은 여러 문제로 입양가정 안에서 힘겨워하시는 입양인분들이 만약 자신이 입양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겪게 되셨을지 현실적으로 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모든 다른 관점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나의 의견은 입양인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이들에게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힘겹게 갈아가는 어린 그리고 성인이 된 수청명의 고아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주기를 바랍니다. 입양인들은 고아로 살아가는 고통과 낙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The vast majority of adoptees have the privilege of education, opportunities to explore their interests, freedom to travel, a culture that does not condemn them based on their heritage, the ability to learn and celebrate the culture of their homeland, to eventually seek out birth parents and relatives, but most of all, to grow up within a family. Yes, adoptees must come to terms with having been abandoned or surrendered, as well as living as a minority, but these difficulties do not distinguish them from those who were never adopted.

입양인들 중 대부분은 교육의 특권, 관심사를 탐구할 기회, 여행하는 자유, 자신의 출생으로 인해 비난 받지 않는 문화, 조국의 문화를 배우고 누릴 수 있는 기회, 언젠가는 자신의 친부모와 가족들을 찾을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 안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입양인들은 소수 계층처럼 살거나 버려지거나 맡겨지는 시기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은 입양인들과 입양 되지 못한 사람들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It is true that orphans who remain in Korea continue to live life within their native language and culture. However, they are not in a position to speak up about their unjust treatment. They live in silence. Their society rejects them. There is no benefit in remaining in a country that does not value or accept you. Any notion of living a full life as an orphan in Korea is pure fantasy. The never-ending discrimination dooms any chance of success, socially or financially. Physical and emotional abuse will remain a part of their lives. This discrimination is a life sentence. All hope is crushed.

한국에 남겨진 고아들은 그들의 언어와 문화 속에 살아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등한 대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며 그저 침묵 속에 살아갑니다. 한국 사회가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당신이 한국에 남아있을 그 어떤 가치나 당신을 받아들여주는 등의 혜택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고아로 일생을 산다는 생각은 어처구니없는 환상입니다.  결코 끝나지 않는 차별은 성공이나 사교적, 금전적인 기회도 불행 한 운명을 맞게 하며 신체적 정서적 학대는 삶의 일부분으로 남게 될 것 입니다. 이런 차별은 고아들에게 종신형이며 모든 희망은 무너져 버립니다.

Since I arrived in America and joined a family as a young adult, my life has been transformed. I now live in a country that values my worth as an individual. Family background is unimportant. I no longer live in fear. My very first job at the Holt office in Eugene allowed me to earn a regular salary. I have been able to travel. I fell in love with a man, and we have two beautiful daughters. I graduated from college. I am able to pursue my interests and also enjoy friendships with those from various walks of life. These things would never have been possible had I remained in Korea. Had I not moved to America, my story would be bleak.

미국에 도착하고 성인으로 이 가정에 합류한 이후로 나의 삶은 변했습니다. 지금은 나 개인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나라에 살고 있으며, 출생배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살지도 않고 첫 번째 직장이었던 유진에 있는 홀트 사무실에서는 정상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여행도 가능해졌으며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름다운 두 딸을 얻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였고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찾아 즐기기도 하고 삶의 많은 영역에서 친구들을 사귑니다.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이러한 것들은 불가능 하며 만약 미국으로 오지 못했다면 나의 이야기는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While I have been living an abundant life, my orphan sisters remain in Korea faced with continual discrimination. My prayer is that Korea will revolutionize how it views orphans, and that the government will focus on aiding adult orphans. However, having lived in both worlds, I can never support the position that a children is better off growing up in an orphanage, even under ideal circumstances, as long as they then enter a society which rejects them. The benefits of adoption far outweigh any benefit a child remaining in his or her homeland and facing such a difficult future.
Thank you for your support in following my journey and for your sincere concern and prayers for young and adult orphan and adoptees. Blessings to you all.

부유한 삶을 누리는 동안 나의 보육원 동기들은 한국에 남아 계속해서 차별을 당했습니다. 나의 기도는 고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되고 정부가 성인고아들의 지원에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세상을 살아본 사람으로, 이들이 고아들을 외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 아무리 이상적인 상황에서라도 고아로 자라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지지 할 수 없습니다. 입양되는 혜택은 조국에 남겨져 어렵고 힘든 미래에 직면하는 것에 비해 훨씬 이점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지원과 저의 여정을 함께 해주신 것에, 그리고 어린 고아와 성인고아들을 위한 진실한 관심과 기도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